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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문학

아니 에르노 대표작 부끄러움 해석

[카페인] 2022. 10. 2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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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대표작 부끄러움에 대한 간단 해설

2022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을 읽었습니다. 해당 소설은 직전에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작품인 <남자의 자리>와 핵심을 공유하는데 바로 계층 차이입니다. 남자의 자리에서 상위 계층은 하위 계층에게 은근한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보내며, 하위 계층인 아버지는 이러한 언어적 문화적 차별에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계속하여 자신의 자리를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화자가 이방인적 관점으로 아버지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하위 계층에서 상위 계층으로 이동한 인물이라는 점과 그 근본에는 학교 교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읽게 된 <부끄러움>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사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해석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해석 2022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를 읽었습니다. 남자의 자리는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로 아버지의 별세 후 그를 보내고 돌아오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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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남자의 자리에 대한 해석인데요 먼저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소설 <부끄러움>의 첫 문장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6월 어느 일요일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는 것이죠. 이 사건을 목격한 주인공은 충격을 받게 되고 이 일은 유년 시절의 이전과 이후를 명확하게 가르는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소설 속의 표현으로는 “그전에는 칠판과 노트에 적힌 날짜와 하루하루의 흐름이 있었을 뿐이었다”라 표현할 정도죠.

 

소설 첫 문장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는 사실은 문학적으로 보면 세상과의 일체감이 깨어지고 부조리를 인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 가정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이방인이 되어 부조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명확한 계층 차이에 대한 인식이며, 이는 곧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으로 치환됩니다.

 

아니 에르노의 해당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계층의 차이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녀가 살던 Y시의 거리 묘사에서 명백히 하류 계층이 머무는 지역에 속해 있고 이를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하류 계층인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쓰는 언어적 표현, 음식을 낭비하지 않고 때 묻은 옷을 그대로 입는 등의 생활양식, 관습에의 강요, 주도적 가치 등을 드러내며 하류 계층의 삶을 묘사하죠.

 

그리고 화자는 이러한 우리의 존재 양식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그것이 삶의 방식이 되었다고 말하죠. 왜일까요? 그것은 그녀가 사립학교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사립학교는 그녀에게 상위 계층의 언어와 행동 양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세계는 밝은 세상, 진리에 해당하고 “공립”이라는 단어가 ‘나쁜’이라는 형용사와 동의어라 하듯 하류 계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재생산합니다.

 

공동 식당이라 하지 않고 기숙사 식당이라 부르고 외투걸이라 하지 않고 옷걸이, 친애하는 수녀님 등 격식을 갖춘 단어를 사용하는 등 이곳에서 배우는 언어는 하류 계층이 사용하는 언어와 차별화되며 또한 전혀 다른 상류 계층의 문화와 규범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하류 계층과는 전혀 다른 상류 계층의 문화적, 언어적 행동양식의 차이는 주인공에게 굉장한 이질감으로 다가오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두 계층 간의 언어적, 문화적 차이는 단순한 취향에 의한 차이가 아니라 계층의 서열을 구분 짓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위의 구문에서 진리의 완벽함과 빛의 세계라는 표현에서 보듯 사립학교에서 배우는 가치는 옳은 것이며, 반대로 자신과 부모님이 속한 하류 계층의 오류의 세계라 교육받으면서 주인공은 세계를 계층 차이라는 이분법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동시에 학교에서 배우는 상위 계층의 코드가 올바르다고 주입받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상류 계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사립학교를 다님으로써, 상류층의 언어적 문화적 교육을 습득함으로써 상위 계층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바뀌게 된 것이죠.

 

위의 장면은 사립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저녁에 주인공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아무렇게나 있는 어머니를 목격하는 장면입니다. 하류 계층의 민낯, 살아가는 방식을 본 선생님과 친구들은 어머니가 인사를 건넸지만 충격과 경악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주인공도 처음으로 자기가 속한 계층을 사립학교의 시선으로 보았다고 명시하고 있죠. 결국 사립학교, 다른 말로는 상위 계층의 표준, 혹은 규범이라 할만한 것이 옳다고 교육받았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에르노 자신이 속한 자리가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과거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했던 장면의 연장으로 생각된다고 말합니다. 소설에서 아버지와 둘이 여행을 떠났을 때 화목하게 웃는 상위 계층 가정을 목격합니다. 책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화목한 가정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죠.

 

화자가 속한 계층에서의 가족의 특성

저들과는 반대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는 아버지의 폭력성, 거친 말, 예의 없음 등은 이와는 대비되는 하류 계층을 정의하는 특성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첫 장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는 장면은 결국 계층 차이에 대한 인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끔찍한 것은 자신만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내밀한 비밀, 어머니가 아버지를 해하려 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남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그것이 그들을 사랑했다는 의미였다고 한 것이죠.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은 입을 굳게 다뭅니다. 이는 사립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어머니의 민낯, 즉 자기가 속한 자리를 들켰을 때 그들이 보인 반응과 같아요. 굳게 입을 다무는 것, 그리고 주인공이 속한 하류 계층의 자리를 드러내는 것은 잘못이며 그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이러한 계층의 차이는 좁혀질 수 없는 어떤 것이며, 학교 교육에서 자신의 자리는 올바르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을 통해, 즉 사립학교의 시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과 자신이 속한 부모님의 자리를 부정해야만 했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삶의 방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은 내밀하고 진솔한 자신의 계층 차이를 부끄러움이라는 키워드로 드러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굉장히 많은 것을 느꼈고 동시에 저자의 삶의 깨달음을 보며 진지하게 저의 자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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