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미야자키 하야오
- 역사
- 무라카미 하루키
- MTG
- 무라타 사야카
- 애니메이션
- 판타지
- 애니
- 영화
- 문학
- 과학
- 웹소설
- 라노벨
- 책
- 엑소더스
- 아니 에르노
- 매직더개더링
- 프란츠 카프카
- 스릴러
- 로맨스
- 소설
- 라이트 노벨
- 카프카 변신
- 카프카 다리
- 매직 더 개더링
- 일본소설
- 카프카
- 뉴베리 수상작
- SF
- 노벨 문학상
- Today
- Total
나의 소소한 일상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해석 본문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해석
2022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를 읽었습니다. 남자의 자리는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로 아버지의 별세 후 그를 보내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의 삶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그의 삶에 대한 객관적인 표적들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담담하게 기술하는 소설입니다.
정말 깊이 있는 소설로, 담담한 문체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기술하는 짧은 단편이지만 내용은 쉽지 않은 바 아래는 이에 대한 해석을 적은 글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자리>의 핵심은 위 구절입니다. 위의 구절에서 주인공은 "계층 간의 거리"와 "이름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별한 사랑"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죠.
동시에 객관적인 표적들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기술한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들자면, 객관적인 표적을 기록하여 적는 것이 문학일까요? 객관적인 표적을 단순히 모아서 그의 삶에 대해 기술한다고 치면 이것은 그저 단순한 기록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진면목, <남자의 자리>라는 소설이 문학으로서 빛을 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의 구절에서 말한 계층 간의 거리에 의한 기술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것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결국 객관적이라는 인식이 가능한 것은 관찰대상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관찰대상에 동화되어 있으면 객관적 인식을 가지기 힘듭니다. 결론적으로 아니 에르노가 남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객관적 표적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삶에 동화되어 있지 않고 멀어져 있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계층 간의 거리라는 표현을 썼듯이 이는 결국 계층이 다르기 때문에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방인적 관점으로 서술할 수 있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아버지를 [그]라 기술할 수 있었던 것이죠. 결국 핵심은 계층 간의 거리라는 것인데, 이 계층 거리는 단절적 인식이 가능할 정도로 층별로 인간의 생을 구별 짓고 정의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라는 소설은 아버지의 삶을 상위 계층, 조금 더 넓게 보면 사회라는 시선에서 관찰한 하류 계층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상위 계층의 하류 계층에 대한 차별과 멸시이며, 자신의 아버지의 삶의 객관적 표적을 통해 드러나는 고유성은 사회와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역사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소설 내에서 아니 에르노는 계층 변화를 맞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진입한 사람이죠. 그리고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 기존 계층에 있던 것을 두고 가야 했죠. 그래서 '이별한 사랑처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가난한 소작농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역시 학교에 다니다가 먹고사는 문제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농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를 통해 세상에 들어가게 되죠. 제대 후 또다시 농사일을 하고 싶지 않아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때 배경적으로는 산업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장 노동자가 된 아버지는 같은 노동계층이었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우여곡절이 있지만 식료품과 카페를 계속 운영하게 됩니다.
이처럼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사회적으로 흔히 말하는 신분 상승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농촌에서 일을 하다가 도시로 가서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후에는 식료품점과 카페를 운영하는 상인이 된 것이죠.
하지만 이는 계층 간의 변화는 아니며 계층 내, 다른 말로 서민적인 틀 사이에서의 상승입니다. (주인공이 표현하듯 이들은 여전히 하류라 불리는 계층입니다) 부모님의 이러한 신분 변화는 시대를 반영하며 동시에 그 시절의 인식을 나타냅니다. 이때 에르노는 부모님이 모든 것을 다 잃고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기술하죠.
남자의 자리는 그녀의 표현으로 하류라 불리는 이러한 아버지 계층의 삶을 생활 패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문화적 격차 그리고 이에 따른 열등의식 등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녀의 부모님에게 있어 가장 주요한 문제는 먹고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물리적 생활 반경은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 곧 그들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보면 그들의 생활 패턴은 단조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그들 계층의 삶을 진실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그들의 일상에 집중해야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그들의 자리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문화적 그리고 언어적 차이이며, 이러한 차이의 근원에는 계층의 차별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인 것보다 계층의 넘을 수 없는 근원적 차이는 여기에서 근거합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라 불리는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차이/차별에 열등감과 수치스러움을 느끼지만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죠.
위의 문장이 소설의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일등석과 이등석이 구분되어 있는 것은 계층 차이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으며 이등석 표를 가진 그가 일등석에 올라타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으로 페널티를 받았으며 또한 문장을 어떻게 쓰는지 몰라 실수를 한 것에 대해 수치심으로 얼굴에 그늘이 집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의범절이라는 차원에서도 열등감을 드러내듯 소설에서 말하는 계층 차이의 핵심은 경제적 차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그가 혹은 하류 계층이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감정을 숨기고 침묵하게 하는 원인이며, 계층 차별의 근거가 됩니다.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일생을 기술하는 것은 이러한 차이와 차별을 드러내는 것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떻게 아버지 계층과의 위화감을 인식하게 되었을까요?
그 핵심적인 요인은 학교의 교육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아버지가 사용하는 그런 언어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고쳐주었죠. 그녀는 아버지가 항상 엉터리로 말하기 때문에 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학교는 에르노에게 올바른 언어를 알려주었으며, 학교를 다니면서 이전 그녀가 좋아했던 것을 촌스럽게 느끼게 되었고 진짜 문학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학교는 상위 계층이 올바르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를 지적하고 태도를 바꿔주려 했던 것이 정당하다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말과 생각은 프랑스어와 철학 수업 등 상위 계층에서는 쓸모없는 것이어서 더 이상 그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죠.
결국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것들로 가족과 그 생활에 위화감을 느끼고 일체감이 깨져버립니다. 그리고 이는 계층 간의 차이를 강조하고 드러내며 상위 계층의 방식은 올바른 것으로 정의하도록 배우며 하류라 불리는 부모님 계층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합니다. 그러니까 위의 구절처럼 그의 태도를 바꿔주려고 했던 것이 정당하다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학교 교육은 소설 내에서 언어적이든 문화적이든 간에 하류 계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공간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재생산은 아버지 계층의 자리를 하류라는 단어로 정의하여 그들의 하류 계층이라는 위계적 인식에 못 박아두고 그들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남자의 자리 내에서 아버지는 열등감과 수치스러움을 느끼지만 저항하지는 않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위계로서 자신의 자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에게 있어 학교에서 배운 교육과 자기가 속한 계층의 간극은 끊임없는 자기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가 그리고 내가 속한 세계를 지속적으로 부정해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 간극은 좁혀질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에르노는 이별한 사랑이라 표현합니다.
따라서 자기가 속한 자리에 대해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를 부정하고 상위 계층으로 진입하는 것에 일종의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를 깎아내리고 부정하고 부끄러과 은연중 멸시의 대상으로 치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교라는 장소는 이러한 메커니즘의 근원에 닿아 있죠. 그래서 책의 첫 부분에서 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분노와 일종의 수치심을 느꼈다고 적은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해석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담담한 서술 속에서 깊고 울림이 느껴지는 문학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 구절은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