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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문학

소설 변용 - 무라타 사야카 단편에 대한 감상

[카페인] 2022. 5. 1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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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변용에 대한 개요]

소설 <변용>은 이번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집 무서 교실의 마지막에 실린 소설로 읽고 정말 감탄한 이야기입니다. 변용은 이번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이면서 향후 작가의 작품이 확장되는 커다란 흐름의 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우선 이 짧은 단편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삶에 대한 현대판 실존적 관점이 아주 충실하게 녹아들어 가 있으며 동시에 깊은 통찰력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변용, 즉 변화를 계속해갑니다. 세상이 변용할 때 그러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함께 변용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가 그것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인 것이죠.

 

[변용 줄거리]

우선 변용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보면 주인공 가와나카는 2년 동안 쉬지 않고 어머니 간병을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이 해결되자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회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그녀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같이 일하는 젊은 두 아르바이트생들이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화를 낸다는 감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말하길 발끈하다 혹은 화를 낸다는 것은 사전 속에서나 나올법한 사양화된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분노라는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화가 난다라는 말을 쓰지 않고 슬프다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위의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태연하죠. 요즘 세상은 그렇게 바뀐 것이 아주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처럼 말이죠. 즉 지금의 세상은 분노를 잊어버렸습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세상에 굉장히 위화감을 느끼게 되며 동시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노라는 감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오랜만에 대학 시절 친했던 친구 준코를 만납니다. 다시 만난 준코 역시 변해있었죠. 그리고 준코는 시대에 뒤떨어지면 안 된다며 주인공을 어떤 모임에 초대하는데 정신 등급을 올리기 위한 교류회 같은 곳이라 합니다.

그리고 준코는 낮은 정신 등급 이야기를 하며 과거 이소가와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이소가와는 두 사람이 대학생 시절 같은 가게에서 일했던 40대 여자로 과거 사상을 굳게 유지하던 사람입니다. (낮은 정신 등급의 의미는 변용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소가와는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랑과 이를 통한 재탄생을 중요시 여기고 화가 날 때는 언제든 분노할 줄 아는 그러한 인물이죠. 그녀는 분노를 잃은 지금 세상 사람들의 대극에 위치하는 인물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지만 변용이라는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소가와라는 인물을 위해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의 분노가 사라진 세상에 위화감을 느낀 주인공은 이소가와를 찾아갑니다. 그녀가 아직도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죠. 다시 만난 그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중요시하고 분노를 표출할 줄 아는 과거 기억 속의 그녀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죠.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 말하고 억눌려 있던 분노를 표출하며 단합합니다. 그리고 준코의 모임 역시 정상이 아니라며 뒤엎으로 가자고 하여 모임 장소에 쳐들어갑니다.

 

두 사람이 찾아간 준코의 모임은 인간 인격의 스탠다드 모델에 대해 회의하는 곳이었던 것이며 향후 유행할 스무 살들의 스탠다드 인격을 정하는 모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행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요즘의 스무 살의 스탠다드 인격은 이전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죠.

동시에 준코와 주인공은 20년 전의 스무살의 스탠다드 모델이었으며, 스무 살에 세상에서 다운로드된 인격이 바탕이 되어 성장해간다는 것. 그리고 이소가와는 50년 전 대유행했던 스무 살의 인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회의의 목적은 30년 후에 유행할 스무 살의 인격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충격적인 모임에서 '마미마눈데라'라는 새롭게 창조된 표현을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유리되었던 세상에서 과거처럼 다시 일체감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다시 이 비정상적인,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변용의 존재가 됩니다. 반면 이소가와는 끝까지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며 소설 변용은 마무리됩니다.

 

[변용 감상 후기]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 소설 변용은 기존의 장편에서 더욱 멀리 나아가려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특히 우리의 인격이 표준이 있으며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계획되어 만들어진다는 발상 역시 기발합니다.

 

변용은 짧은 단편이지만 아주 밀도 높은 소설이며 동시에 수많은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인공은 2년 동안 사회로부터 사실상 유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기는 세상에 대한 의문은 실존적인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에 대한 의문과 답을 찾아가는 그러한 과정은 그녀의 소설의 모토인 우리는 언제나 도중에 있는 존재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죠.

 

둘째 과거의 장편들 보다 더 다층적입니다. 과거 사야카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속한 과거의 가치관과 그와는 완전히 달라진 현재의 가치관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연중 과거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간극을 줄이며 세상과의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변용을 보면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과거 세대, 주인공의 세대 그리고 현재의 세대로 이전의 소설보다 더 다층적인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소가와, 주인공 그리고 준코, 젊은 아르바이트생들로 대표되죠. 구조적으로도 과거 이소가와와 주인공의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간극이 현재의 주인공과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생들의 간극으로 재연됩니다. 

 

그리고 그 간극 속에서 주인공과 이소가와와 사이에는 분노라는 동질감이 자리합니다. 이러한 세대적으로 나누어진 구간들은 과거처럼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보다는 변용이라는 표현 그대로 변화에 더 초점을 두게 되고 도중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보통, 정상 그리고 비정상이라는 구분이 아닌, 변용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세상이 변용할 때 나 자신 역시 자연스럽게 변용해가는 것인데 주인공의 겪는 위화감과 감정의 변화들을 통해 사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들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확연하게 세계의 변용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마지막으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또 하나의 의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체성 있게 살아온 존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의 스탠다드 인격은 계획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무서운 생각이죠. 알고 보면 우리는 세상이 계획한 스무 살의 인격을 무의식적으로 다운로드하여 그를 토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변용이라는 것 역시 계획된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소설 변용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 중 하나는 분노라는 것은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분노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분노가 사라진 세상은 말 그대로 인격이 제거된 시스템의 하나의 숫자에 불과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분노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타오르는 형상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나 생각합니다.

 

변용은 이번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집 중 최고였는데 아마도 이 단편은 전초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작가는 변용에 나온 생각들을 거대한 줄기로 하여 장편 소설로 확장될 것이라 확신하는데요 그래서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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