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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1995 애니메이션 해석 – 인간을 넘어서

[카페인] 2023. 5. 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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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1995를 보았습니다. 1995년에 나왔던 해당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임과 동시에 굉장한 철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시대를 넘어서는 명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매트릭스 등 많은 작품들이 공각기동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할 것도 없죠.

 

최근에 공각기동대 1995 극장판을 ott를 통해 다시 보게 되었는데요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대적이며 하나의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깊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영화는 AI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현시대에서 더욱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해당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석을 적어보았습니다.

 

아래는 공각기동대 1995 극장판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1995 애니메이션 해석 – 인간을 넘어서

공각기동대 1995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 사회는 네트워크가 극도로 발달하여 국가와 사회가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세계이며 고도로 발달된 기술로 인간의 신체를 기계로 대체될 수 있으며 심지어 두뇌까지 전자화(전뇌화)가 가능한 세계입니다.

 

주인공 모토코

 

주인공 모토코는 극단적으로 모든 신체가 사이보그이며 전뇌화된 존재입니다. 자신의 신체가 만들어진 주인공은 자신의 감각이 자신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며 나라는 존재조차 가짜가 아닐까 하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변종, 혹은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탄생합니다. 속칭 인형사라고 하는 프로그램이죠. 그리고 공각기동대 1995는 이러한 모토코와 인형사라는 프로그램의 만남을 통해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기억에 의해 살아가고 기억으로 규정되는 존재입니다. 기억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함과 동시에 나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이며 실감입니다. 기억을 상실하는 것의 가장 무서운 점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신할 수 없고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애니메이션 초반에 인형사를 쫓는 과정에서 한 청소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청소부는 아내의 고스트를 해킹하면서까지 아내가 자신을 떠나간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억은 인형사에 의해 심어진 가짜 기억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할 기억이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가짜라면, 과연 나는 어떤 근거로 나라는 존재를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 거짓 꿈은 어떻게 지울 수 있죠?
- 청소부의 절규

 

청소부의 눈물

 

그렇기에 자신의 기억이 가짜라는 것을 깨달은 청소부는 마음이, 존재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바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상체험도 꿈도 존재하는 정보는 전부 현실인 동시에 환상인거야
- 바토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지니고 인간은 그저 기억에 의해 개인으로 성립되지. 설령 기억이 환상과 동의어라고 해도 인간은 기억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

- by 인형사

 

결국 자신의 기억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존재는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데 공각기동대의 세계는 전뇌화가 가능하고 따라서 청소부처럼 자신의 기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이에게 침범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심어진 정보, 환상 등에 의해 기억이 왜곡된다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나를 정의해야 될까요?

 

영화는 극단적인 세계관을 통해 이를 드러내지만 사실 기억이라는 것은 사진과 같은 객관적인 데이터가 아닙니다. 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더해지고 변형된 환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특히나 공각기동대 1995의 세계처럼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어 환상과 현실이 공존한다면 결국 기억에만 의존하여 나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오히려 기억에만 의존하여 나를 정의한다면, 가짜 기억이 심어진 청소부처럼 결국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절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죠. 가짜 기억을 진짜라고 믿고 살아가는 개인이나 자기 기억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나 모두 거짓된 삶 속에 절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이 곧 자신을 규정짓는다고 믿고 기억에 의존하면서 살아간다면 말이죠. 근본적으로 자신의 기억 그 자체가 진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해당 세계는 신체 역시 의체화가 가능합니다. 기억은 단순히 머릿속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의 기억이 함께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기억 속에는 우리가 그때 느꼈던 신체의 감각 역시 더해져 있는 것인데, 의체화가 가능한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신체의 감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뇌와 의체의 기억의 불일치, 그리고 뇌와 의체의 감각의 불일치가 더해지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는데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처럼 완전히 의체화된 사이보그는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 어쩌면 난 옛날에 이미 죽었고 지금의 난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모의 인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

(중략) 결국 주변 상황을 통해 나라는 게 있다고 판단하는 것뿐.

만일 전뇌 자체가 고스트를 낳고 혼을 깃들이는 거라면 그땐 뭘 근거로 나라는 존재를 믿어야 할까?

 

따라서 기억으로도 나를 정의할 수 없고 신체가 본디 자신의 것이 아닌 사이보그인 주인공은 더더욱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신하고 규정짓지 못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고독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진정 자기가 알고 있는 진짜 자기인지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그렇게나 음울한 이유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단 주인공 모토코뿐만 아니라 자각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인간들은 모두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기 자신에 의해 투명하게 정의할 수 없으며 인간은 마네킹과도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유한성과 필연성의 절망이 깊게 뿌리내린, 절망과 허무주의가 팽배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래사회에서 의체화가 가능하고 네트워크가 개인의 뇌와 연결될 때 우리는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죠.

 

이렇듯 공각기동대 1995가 말하는 핵심은 이러한 전뇌화와 의체화가 가능한 미래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존재해야 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인공 모토코를 통해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부품이 결코 적지 않듯이 내가 나이기 위해선 놀랄 만큼 많은 게 필요해. 타인과 구분 짓기 위한 얼굴, 의식할 필요 없는 목소리, 잠에서 깰 때 바라보는 손 어린 시절의 기억, 미래의 예감 그뿐만이 아냐.

내 전뇌가 액세스 가능한 방대한 정보와 광활한 네트워크 그 모든 게 나의 일부로써 나라는 의식을 형성하고 동시에 나를 어떤 한계 안에 제약해 버려.


- by 모토코

 

결국 이 뿌리 깊은 절망을 걷어 내고 투명하게 나를 정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바로 새로운 무한한 가능성.

 

위의 주인공의 말처럼 내가 나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나를 제약하는 것인데 이러한 제약들을 넘어설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획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되는 미래세계는 새로운 무한한 가능성을 창조할 원동력을 이미 상실했습니다. 그저 절망이 뿌리 깊이 내린, 끝없이 죽음으로 치환되는 세계일 뿐인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무한한 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상위 존재인 인형사와의 만남입니다. 모토코는 인형사와 만나 그와 융합을 통해 방대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무한한 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진화계통수

 

그런데 두 사람이 융합 전에 나타나는 장면과 대화는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주인공과 인형사와의 대화 장면에서 벌집이 된 진화계통수가 아래로부터 위로 천천히 비칩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인류가 자리하고 있죠. 그런데 이 진화계통수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의 선형적인 진화과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당신들의 DNA 역시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해. 생명이란 정보의 흐름 속에 태어난 결절점 같은 거야.

by 인형사

 

모토코: 또 한 가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은?

인형사: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고 네가 지금의 너로 있으려는 집착은 널 끝없이 제약할 것이다.
이젠 그 제약을 버리고 상부구조로 전환할 때야.

- 인형사와 모토코의 대화

 

인형사가 한 저 말은 바로 그동안 주인공이 바다에 잠수하면서까지 그렇게나 찾아 헤맸던 답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이란 정보의 흐름 속에 태어난 결절점이고 내가 나로 존재하려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나를 제약할 뿐입니다.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 머물지 말고 새로운 상부구조, 즉 상위 존재로 반드시 도약하여야만 뿌리 깊은 존재의 절망을 거두어내고 투명하게 나를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미래 사회, 공각기동대 1995의 세계에서 선형적인 진화의 과정 혹은 방식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는 것 그리고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제약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 단계 점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형사와 같은 상위 존재와의 만남과 융합을 통해서 말이죠.

 

주인공 모토코는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광대한 네트워크를 얻으며 제약을 넘어서고 인형사는 복제본이 아닌, 생명체로써 생과 사 그리고 다양성의 생성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결국 인간인 모토코는 자신의 본질과 인형사의 본질이 융합하고 새로운 존재로 대체되면서 자기를 극복하고 생성의 존재로 환원된 것입니다.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 인형사가 말하듯 그렇게 모토코는 새롭게 변화하고 생성하는 존재로 환원된 것이죠.

 

아이 때는 말하는 것도 아이 같고 생각하는 것도 아이 같고 논리도 아이 같은 법이건만 어른이 된 연후엔 아이 때의 것들을 버렸노라.

by 모토코

 

 

결국 공각기동대 1995의 세계에서 생성하고 긍정하면서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는 과거 아이(인간)였을 때의 것들을 버린 모토코와 같은 인간을 넘어선 초인 혹은 신인류인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존재가 된 그녀는 다음 세상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바로 광대한 네트워크 세상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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