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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김수빈 작가의 <고요한 우연>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제1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매년 읽는 청소년 문학 시리즈인데요 이번 작품 역시나 굉장히 멋지고 인상 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기할만한 점은 <고요한 우연>은 이전의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의 작품들에 비해 비유와 은유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을 아주 깔끔하게 잘 활용한 덕분에 구조적으로 굉장히 멋진 소설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달과 우주를 이용한 비유와 은유는 일품이었습니다.

 

달에 빗댄 마음 p.57

 

장황한 설명보다는 때로는 짧은 비유나 은유가 더 강렬하게 다가올 때가 있는데요 이 소설이 바로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더하여 SNS가 서사의 주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것 역시 특징입니다. 이러한 SNS 공간이 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과 이를 반영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양식은 현재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을 잘 반영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래는 고요한 우연에 대한 줄거리와 감상후기로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및 줄거리

1) 등장인물

고요한 우연에는 주요하게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우선 주인공 이수현은 고등학교 1학년의 평범한 여자 아이입니다. 이름부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흔한 이름으로 설정되어 있죠. 그런데 이 인물은 정말로 묘하게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특히 자신의 위치를 현실적으로 자각하고 있는 점이 그러합니다.

 

 

위가 그러한 자기 인식을 보여주는 예 중 하나인데요 요즘 청소년들이 특히나 현실 자각이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같은 반의 한정후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정후는 자신과 사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고백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동경에 가까운 마음으로 바라만 본다고 말하죠.

 

이처럼 주인공은 특별히 잘하는 것도, 모자란 부분도 없는 현실적인 성격을 가진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하지만 심성은 정말 올곧고 착한 아이이며 조금 마음 여린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런 평범한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서지아는 주인공 수현의 오랜 단짝 친구로 항상 수현의 곁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 친구와 주인공 수현의 엄마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역시 어느 한 존재가 올곧고 바르게 자라나는 데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만큼 주인공의 버팀목이 되는 친구입니다.

 

한정후는 반에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로 주인공 수현이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어른스럽고 다정하며 배려심이 강한 아이로 잘생기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며 같은 반 반장이죠. 그런 그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누나가 아프다는 것으로 나중에 SNS 비밀 계정의 주인인 수현에게 털어놓습니다.

 

다음으로 같은 반 친구 은고요와 이우연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고요한 우연>인 것은 이 두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은고요는 주인공이 생각하기에는 특별한 아이예요. 이름도 특이해서 각인되며 연예인처럼 예쁘고 공부도 굉장히 잘합니다. 주인공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범할 수 있는 것들도 고요를 만나면 한없이 특별해졌다라 표현하죠. 그런데 고요는 다른 이들의 호의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학기 초 그녀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모두 쳐내고 스스로 고립되길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 아이들의 반감을 샀고 그 때문에 그녀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죠.

 

마지막으로 이우연은 어느 날 무의식적으로 수현의 꿈에 나왔기에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비밀계정 SNS를 발견하고 대화하면서 그를 알아가기 시작하죠. 딱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만큼만 혼자서 지내는, 말수가 적은 친구입니다.

 

2) 줄거리

주인공 수현은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현실적인 성격에 자기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그렇지만 심성은 착한 아이입니다. 그는 같은 반의 한정후를 좋아하고 은고요를 조금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고요한 우연>은 주인공 수현이 꿈을 꾸면서 시작합니다. 그 꿈에 모르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 알고 보니 그 꿈에 나타난 인물은 같은 반의 이우연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우연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를 관찰하기 시작하죠.

 

그는 조용한 성격에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법 없이 딱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지 않을 만큼만 홀로 지내는 아이였습니다. 수현의 표현에 따르면 흡사 그림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빈 구석을 채우기 위해 그려 넣은 배경 같았다고 하죠.

 

같은 반에서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 유일하게 두 사람이 있는데 고요와 우연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미술시간, 보이지 않는 것을 주제로 수채화를 그리는 수행평가에서 주인공은 우연이 [달의 뒷면]을 그리는 것을 보고 우연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갑니다.

 

이때 은고요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호의를 극도로 싫어하며 홀로 지내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친구들의 앙심을 사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심해져 어느 날부터인가 누군가가 고요의 자리에 쓰레기 더미를 올려놓기 시작합니다.

 

주인공 수현은 이 날의 일이 명백한 괴롭힘이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마음 불편해합니다. 고요를 도와주고 싶지만 용기가 없고 다른 아이들의 미움을 살까 봐 용기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죠.

 

어느 날 수현은 우연히 이우연이 핸드폰을 떨어뜨렸을 때 주워주는데 거기에 있던 SNS계정을 보게 됩니다. 그 계정의 이름은 MARE TRANQUILLITATIS로 바로 고요의 바다를 뜻하는 라틴어였던 것입니다.

 

고요의 바다는 처음 달에 도착한 닐 암스트롱이 인류의 첫 발을 내디딘 곳입니다. 그래서 그 계정을 검색했더니 비공개 계정이어서 수현은 호기심에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다른 계정을 만들어 팔로우를 요청합니다.

 

후에 드러나지만 그 계정의 주인은 바로 은고요의 계정이었습니다. 고요는 수현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하죠. 그리고 고요의 계정을 팔로우하는 눈에 띄는 아이디가 있었으니, 후에 정체가 밝혀지지만 그는 바로 이우연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디는 마이크 콜린스의 달로 마이크 콜린스라는 인물은 아폴로 11호의 조종사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수현은 익명의 SNS를 통해 고요와 우연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 두 사람을 알아가는 것을 빗대어 책의 제목이 <고요한 우연>이 되는 것이죠. 정말로 우연이 고요하게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 수현은 좋아하는 정후의 SNS계정을 보다가 자신이 새로 만든 익명의 계정으로 댓글을 달아버리는 실수를 합니다. 이를 계기로 정후와도 익명의 계정을 통해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진솔한 대화를 하게 되죠. 그리고 정후의 가장 깊은 고민 중 하나인 누나가 아프다는 것 역시 알게 됩니다. 겉으로는 밝은 그 역시 속마음은 그늘진 부분이 존재했던 것이죠.

 

동경했던 은고요의 벽 너머는 상처받고 싶지 않고 영영 혼자일까 봐 두려워하는, 애처롭고 연약한 아이였고 정후 역시나 겉으로는 밝지만 아픈 누나 때문에 잠도 잘 들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었으며 이우연 역시 자신의 못 미침에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자신의 진심이 SNS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 지금의 현세대를 표상하고 있죠.

 

수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은채 이들이 마음속에 품었던 속마음을 들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결국 주인공은 용기 내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각자의 반응은 다르지만 결국 그들의 관계는 익명의 SNS가 아닌,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는데요 앞으로 어떤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됩니다.

 

독후감

<고요한 우연>을 읽고 느낀 점은 정말로 비유와 은유가 멋지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은 목차를 보면 우주의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폴론이 달에 착륙한 것을 기점으로 행성과 항성의 이야기까지 이어지며, 이야기들 역시 이를 비유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감정이 시시각각 모양이 바뀌는 것을 달에 빗대거나 우리의 숨겨둔 내면을 달의 뒷면에 빗대고 그것이 비공개 SNS로 표현되는 것 등등.

 

달의 뒷면인 고요의 바다에서 바다는 실제로 바다는 아니고 달 표면의 짙은 검은색으로 보이는 부분으로 닐 암스트롱이 첫 발을 내디딘 곳이 이 [고요의 바다]입니다. 고요의 계정은 [고요의 바다]인데요 고요가 수현의 익명의 계정 팔로우를 허락해 준 것을 달의 뒷면인 고요의 바다에 첫 발을 내 디니는 암스트롱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수현이 고요의 마음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며, 역으로 달에 인간 발자국이 남은 곳이 바로 고요의 바다이듯 이러한 달을 포함한 우주와 연관된 것들이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들의 표현을 나타내니 유심히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요한 우연의 감상을 적자면 이 소설은 지금의 현실 반영을 잘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SNS가 우리의 삶에서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해 가고 있습니다. SNS는 여타 커뮤니티와는 다르게 '나'가 중심이 됩니다. 나의 일상과 생각들이 중심이 되어 다른 참여자들과 소통하며 이러한 연결들이 축적되어 나를 중심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죠.

 

특히나 소설에서 비공개 계정을 통해 허락된 사람만이 달의 뒷면에 발을 디딜 수 있으며, 이렇게 허락된 사람끼리 진솔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달을 올려다보면 달의 앞면만 볼 수 있지만 소설에서 SNS를 통해 우리가 일생 동안 지구에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속마음)을 볼 수 있듯 말이죠.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온라인의 대화에서 끝을 맺지 않고 그것이 결국 오프라인, 즉 현실의 관계로 종합해 나아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 때에는 누구나 말 못 할 고민들이 많습니다. 고요한 우연은 SNS라는 공간을 통해 그것을 아주 잘 보여준 소설이었습니다. 누구나 그 시절에는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고 나약해지기도 합니다. 누구나 태양 같은 존재일 수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스스로 빛을 내지 않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다른 이들의 곁에 서서 자기를 찾고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빛을 낼 수 있습니다.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는 않지만 다른 항성의 빛을 반사해 밝게 빛나는 행성 금성처럼 말이죠.

 

이 책의 마지막 장은 <탐사 시작>인데요 항상 금성처럼 빛나는 수현과 다른 모든 이들이 걸어갈 길을 응원하게 되는 멋진 청소년 문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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