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너의 이름은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너에게로 가는 길 - 너의 이름은]

가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의 결말 만으로 굉장히 기분 좋은 그런 이야기. 이 애니메이션도 보고 그렇게 느꼈습니다. 결말에 이르러 결국 안심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 아름다운 배경과 이를 비추는 기법도 너무나도 멋지고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감성과 표현력은 대단하네요. 이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상영할 때 극장에서 못 보고 이제야 보다니 아쉽습니다.

 

제목이 「너의 이름은」이므로 이름이 왠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것은 하나의 인식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존재의 진정한 의미로 다가온다고 할까요. 이름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로 보이기도 합니다. 동양권에서는 대부분 이름에 한자가 쓰여 의미가 담긴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이 이름을 지을 때만 생각해봐도 어떠한 의미나 소망을 담아 신중하게 짓습니다.

 

5월 초하루에 태어날 사내아이의 이름입니다.
대대손손 세상을 밝히는 큰 사람이 될 겁니다.

- 드라마 도깨비 中 -

 

예전에 유명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 과거 김신의 부하였던 남자에게 집과 차를 주면서 마지막으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줍니다. 세상을 밝히게 될 사람이라면서. 왜 이름을 주었을까요? 이름이라는 것은 역시 단순히 단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애니메이션을 보면 남자 주인공인 타키와 여자 주인공인 미츠하는 갑자기 서로 몸이 바뀝니다. 그리고 서로 바뀐 몸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을 체험하고 서로에 대한 대한 이해가 수반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간축은 어긋나 있었으며, 어긋난 시간의 축에는 과거 행성의 충돌로 미츠하가 죽고 마을이 멸망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를 위해 되돌리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미츠하는 무녀 집안의 딸입니다. 배경이 범상치 않네요. 뭔가 신비한 힘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타키는 미츠하에게 선택받은 것 같습니다. 타키를 기준으로 보면 3년 전에 미츠하에게 머리끈을 넘겨받은 것이 됩니다. 미츠하가 머리끈을 타키에게 준 것 역시 무스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을 잇고 사람을 잇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둘의 이어짐은 여기서 시작되는 거죠. 미츠하가 넘겨준 이 머리끈을 타키는 굉장히 소중하게 부적처럼 차고 다닙니다. 몸이 바뀌었을 때 타키인지 미츠하인지 구분하기 쉬운 방법은 타키가 밖에서 미츠하가 준 머리끈을 손목에 감고 있으면 타키 본인이고, 아니라면 미츠하입니다. 

 

 

미츠하의 할머니가 실을 잇는 것, 사람을 잇는 것 모두 무스비이며 무녀들이 만드는 매듭 끈은 신의 능력,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한 것이며 라고 말합니다. 미츠하는 본인의 시간이 끊어지기 전에 자신의 매듭끈을 타키에게 넘겼으며, 미츠하의 시간의 흐름이 타키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타키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미츠하의 매듭끈을 부적처럼 소중히 간직하며 미츠하의 끊어진 시간을 잡아두고 있었던 것이 되었습니다. 이 매듭끈은 후에 황혼의 시간에서 다시 미츠하에게로 돌아옵니다. 결과적으로 미츠하가 3년 전의 타키에게 건낸 머리끈은 끊어진 시간이 다시 이어지기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3년 전의 타키와의 인연을 미츠하가 만들었으며 3년 전의 타키 기준으로는 이때 이어짐, 즉 무스비가 발생합니다.

 

 

타키를 좋아하게 된 미츠하가 넘겨준 머리끈은 그녀의 가장 소중 한 것 중 하나이며 사랑의 이어짐입니다. 타키가 미츠하를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꼬이고 엉키고 끊어진 시간을 다시 잇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운명 역시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끊어진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다시 이어주는 게 아닌지. 그리고 그들의 사랑 자체가 마을 사람들의 구원과 이어지면서 "그들의 사랑은 운명이다"라는 당위성을 가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름과 함께 관계성이 시작된다는 것이 아닐까요? 이름을 모를 때 어떤 존재는 불명확한 인식에 머무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컴퓨터 기능을 담고 있으며 전화와 인터넷 등이 가능하며 터치 스크린 방식의 손에 쥐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장치"라는 이런 설명보다는 그냥 딱 한 단어로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다른 설명을 가져다 놓을 필요 없이 명확하게 인식이 됩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이름 하나로 말이죠. 사람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름은 그 본질과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으로 서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서로를 확인하고 자신의 기억 속에 그 사람의 본질을 온전히 담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김춘수의 시에서는 이름을 불러주니 나에게로 온다고 합니다.

 

이름을 부를수록 그것이 더 명확하고 선명하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즉 그 사람의 의미 혹은 본질을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름은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츠하와 타키가 황혼에서 만날 때 마지막으로 묻는 것은 이름입니다. 이름만 있으면 언제든 그 사람에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합니다. 그래서 잊지 말아야겠다고 한 것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황혼이 끝나고 결국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 애니메이션의 시작처럼 불명확한 꿈과 함께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무언가 사라져 버렸다는 감각만 남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너의 의미와 너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리 위를 스쳐 지나갈 때 방울소리가 울리는 것, 서로 반대편을 향해 가는 전철에서 마주 본 것만으로도 서로를 깨닫고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모습은 정말 운명 같다고 느꼈네요. 그리고 마지막에 서로에게 가는 길과 서로의 의미를 묻습니다. 너의 이름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