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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및 감상 후기

조지 밀러 감독의 3000년의 기다림을 보았는데요 정말 놀랍고도 독특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굉장히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3000년의 기다림은 러브스토리를 테마 중 하나로 삼지만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이야기를 통해 비유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서로 공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러브 스토리 영화의 형식과는 상당히 결이 다릅니다. 그래서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 영화는 진(DJINN: 정령)이 주인공인 알리테아에게 그가 왜 병 속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진의 삶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진정으로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외로움 그리고 상실에 대한 이야기로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죠.

 

그리고 진의 이야기에서 끝에서 주인공인 알리테아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의 진정한 의미는 진이 겪었던  3000년이라는 세월의 이야기를 통해 알리테아가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되돌아보며, 끝에 이르러서는 진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특히나 신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시각효과가 더해져 정말 묘한 여운을 남기는 멋진 영화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에서 각각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알리테아를 비추는 거울인지에 대해 조금 적어볼까 합니다.

 

아래는 3000년의 기다림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에 대한 해석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3000년의 기다림 포스터 출처: IMDB

 

줄거리 및 해석

1) 시바 여왕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인 알리테아는 서사학자입니다. 그녀의 전공은 이야기로 인류의 모든 이야기에서 공통된 진실을 찾는 인물이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이스탄불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 있는 골동품 가게에서 작은 병 하나를 선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병 안에는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는 진(Djinn)이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알리테아(좌) / 진(우)

 

진(Djinn)은 알리테아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도 자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하죠. 그리고 그녀는 진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병에 갇히게 된 이유를 듣게 됩니다.

 

시바 여왕

 

진은 과거 시바란 여인을 사랑했다 합니다. 그가 말하길 그녀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솔로몬이 그녀에게 구애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진은 시바를 단념시키려 했지만 솔로몬의 노래는 그녀를 사로잡았고 그녀가 낸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들을 모두 완수합니다. 그리하여 시바는 솔로몬 왕에게 가게 되죠. 하지만 시바를 놓을 수 없었던 진은 결국 솔로몬 왕에 의해 병에 갇혀 홍해의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맙니다. 그렇게 2500년 동안 버림받은 채 병 속에 갇혀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병 속에서 아득한 세월을 보내면서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에 분노하다가 후에는 신에게 자신을 풀어달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것조차 헛된 희망임을 깨닫자 종극에 이르러서는 평생 병 속에 머물게 해 달라 빌며 자신을 속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 그것은 진에게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란 말을 하죠.

 

나는 필요한 것들을 다 가진 나이예요. 만족스럽고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죠.
By 알리테아

 

이 이야기는 비유적으로나 은유적으로 알리테아의 현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알리테아는 예전에 남편이 있었는데 진과 시바처럼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죠. 그리고 두 사람은 일찍 결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를 떠나가 다른 여자와 살고 있습니다. 또한 남편 역시 시바 여왕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간청하지 않았죠. 그녀는 진이 느꼈을 그 감정을 그대로 느꼈고 시바 여왕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마음이었지만 결국 만족스럽고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지금 그녀는 혼자인데 진이 홀로 병 속에 갇혀 느꼈을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진의 비유대로 고독 속에서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걸텐과 무라드 이야기

후에 진의 병은 걸텐이라는 여자에 의해 발견됩니다. 그녀는 진에게 무스타파 왕자가 자신에게 반하게 해 달라 소원을 빕니다. 무스타파 왕자는 술레이만 대제의 장남으로 왕좌를 계승할 사람이었죠. 진은 그 소원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소원은 그의 아이를 가지는 것이었는데 이 소원 역시 들어주죠.

 

걸텐(좌) / 무스타파(우)

 

그런데 무스타파 왕자는 권력 다툼의 장기말이 되어 희생됩니다. 그리하여 걸텐 역시 생의 위협에 처하게 되는데 진은 걸텐에게 살려달라는 소원을 빌라며 간청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소원을 빌지 않았고 결국 자객에게 붙잡혀 생을 마감합니다. 진은 걸텐의 세 번째 소원을 완성해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걸텐 역시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와 함께 자신의 생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진에게 다시 속박이 채워지게 되죠.

 

무라드 4세

 

이후 진은 다시 궁전을 배회합니다. 그러다 무라드란 인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생을 응시하죠. 그는 정령의 힘을 가진 혈통으로 이후 왕위를 계승하고 전장을 누빕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영혼마저 타락해 버렸고 평생 통치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려 합니다. 그는 폭군이 되었고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해 무라드는 항상 혼자였죠.

 

그런 폭군이 되어버린 무라드의 마음을 늙은 이야기꾼 하나가 사로잡습니다. 이야기로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노인은 곧 무라드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고 그 우정은 사랑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노쇠한 이야기꾼이 세상을 떠나자 무라드는 미쳐버려 홀로 술만 마시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진 역시 다시 망각 속에 남겨지게 되죠.

 

이 두 이야기 역시 알리테아가 그녀의 삶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타냅니다. 그녀 역시 걸텐과 같이 아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이를 잃었고 무라드와 이야기꾼의 에피소드에서 보듯 현실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아 홀로 고독했던 알리테아에게 있어 이야기는 그녀를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그녀의 직업이 서사학지이듯 말이죠. 그런데 그 노인의 죽음은 다소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습니다.

 

알리테아는 아이를 잃었죠. 그 이후 남편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 남편은 그녀를 떠나 지금은 다른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있는데 그 책의 이야기는 아이를 잃은 시점부터 뒤가 백지입니다. 그 노인의 죽음과 같이 그녀는 이야기를 잃어버린 것으로, 공허와 고독 속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운 그녀의 현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홀로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 무라드처럼 말이죠. 그래서 진이 망각 속에 남겨져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인식할 수 없는 그 고독한 감정에 공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제피르 이야기

3000년의 기다림에서 진이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은 제피르였는데 그녀는 12살에 부유한 상인과 결혼한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다른 두 부인은 그녀를 싫어하고 시종들까지 그녀를 조롱하듯 했기 때문에 새장 속의 새처럼 자신의 방에 갇혀 지내는 인물이었죠.

 

제피르

 

그러던 어느 날 제피르는 운명처럼 진이 갇혀 있는 병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첫 번째 소원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은 그 소원을 들어주었죠. 두 사람은 온 세상의 지식을 방안에 가두었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진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제피르의 두 번째 소원으로 미지의 지식을 완성하기 위해 정령처럼 꿈꾸는 법, 깨어있기를 빌게 되죠. 그리하여 그녀는 보이지 않는 힘을 설명하는 공식을 완성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제피르는 진의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진은 자신이 제피르의 세 번째 소원을 이루어 준 후 가질 자유보다도 그녀의 존재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죠. 때문에 그녀의 포로가 되어서라도 그녀의 곁에 있기를 갈망했으며 자유를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아려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은 제피르의 세 번째 소원을 막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진이 남편처럼 자기를 구속한다며 화를 냈고 결국 당신을 만났던 걸 잊어버리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그 소원은 즉시 이루어져 그녀는 진을 잊게 되었고 진은 병 속에 갇힌 채로 남아 있게 되고 후에 알리테아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죠.

 

제피르의 수집품
알리테아의 수집품

 

이 제피르라는 인물은 사실상 알리테아 그 자체입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알리테아가 비행기 안에서 다리를 떠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피르 역시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게다가 제피르는 자신의 지식을 수집한 병 속에 숨겨두는데 그녀의 방안에는 무수한 병이 있죠. 마찬가지로 알리테아의 방에도 비슷한 수집품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제피르는 사실상 알리테아를 그대로 투영합니다.

 

결국 제피르와 같이 알리테아 역시 자신이 새장 속의 새와 같은 존재라 느끼며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스스로 문을 닫았던 것입니다. 또한 제피르가 당신을 만났던 걸 잊어버리면 좋겠다라 말했던 것처럼 스스로의 이야기를 부정하고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며 또한 자기를 속이며 자신의 이야기는 멈춘 상태의 상실과 공허, 고독감 속에 위치한 알리테아를 투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알리테아는 진이 해 준 이야기들을 듣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과오를 반성하고 상실을 공유하며 갈망을 찾고 진에게 자신이 사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진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의 로맨스일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의미로는 투영된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동시에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었죠.

 

존재란 시간을 이야기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라 말하는 듯 이렇게 멈춰있던 그녀의 이야기는 진을 통해 새롭게 적혀 나가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근본적으로 불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의 일은 진실이 아닌 자신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 말이죠.

 

 

하지만 놀라운 점은 화면에 진이 보이지 않아도 확고하게 그 존재, 그리고 이야기를 믿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가 보는 이 3000년의 기다림이란 영화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3000년의 기다림은 그 오래된 이야기들로부터 자신을 찾아가고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인데요 주인공과 진의 삶에서 공명되는 부분을 유심히 관찰하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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