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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어보았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라는 멋진 구문으로 유명한 책이기도 합니다. 데미안은 첫 문장부터 읽고 반해버렸습니다. 뒤의 서사는 말할 것도 없고요.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많은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온다는 것이 멋진 것 같습니다. 싱클레어라는 소년의 한 편의 서사시는 시적이면서도 신화적인 느낌이 듭니다.

 

데미안의 줄거리는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데미안을 만나 성장을 다룬 이야기라고 익히 알려져 있는데 제가 느끼는 소설의 내용은 이것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데미안에 대해 적어볼까 하다가 그냥 핵심만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데미안을 읽고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데미안은 자신을 찾는 길이기도 하며, 인류의 꿈이기도 하며, 신화의 길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변혁 같기도 했습니다.

 

 

데미안 - 내면을 찾아서. 신화의 길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위의 구절이 데미안의 핵심입니다. 저 초인과 같은 존재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소설을 조금 쉽게 이해하려면 저것을 데미안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안에 있는 것이며,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기이며 동시에 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두 세계」를 보면 싱클레어에게는 밝은 세계와 어둠의 세계인 두 세계가 존재하고 이 두 세계는 매우 가깝게 닿아 있다고 합니다. 싱클레어에게 있어 어두운 세계는 처음에는 그저 인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로머라는 존재로 인해 이 어두운 세계를 체험하고 처음으로 악이라는 것과 대면하고 어두운 세계의 힘과 자신의 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함에 있어 굉장한 고통을 겪습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만난 시기가 크로머 때문에 어두운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던 이 시기입니다. 싱클레어는 「카인」에서 그것이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데미안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싱클레어를 구해준 영웅인 것이죠. 데미안을 싱클레어의 길 혹은 또 하나의 자기라고 생각할 때, 크로머로부터 싱클레어를 구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싱클레어의 영웅인 데미안의 묘사는 굉장히 특이합니다. 어리지만 소년처럼 보이지 않고 신비하며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합니다. 등장할 때 상장(喪章: 상 중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을 달고 있었다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입니다.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

나는 꿈에서처럼 데미안의 목소리와 영향력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다니! 나보다 더 잘, 더 분명하게 알다니!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고통받을 때 데미안이 크로머를 쫓아내 준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자기 내면 속에 있는 진정한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싱클레어 자신의 내면의 힘을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기니까요.

 

우리들 마음속에는 우리들 자신보다 잘 해내고 강한 것이 들어 있다는 걸 데미안은 크로머를 물리치면서 보여준 것입니다. "싱클레어! 너의 내면 속의 힘이 이 정도라는 걸 깨달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안의 자기는 타인이 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나를 다스리는 건 진정한 자기 자신이니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데미안은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소설 전반에서 더욱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꿈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며, 데미안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먼 곳에서도 싱클레어의 생각을 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꿈」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데미안은 먼 곳에 있어도 싱클레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훤히 꿰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진정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어느 하나의 무의식 세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몽환적인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그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물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눈은 단지 물끄러미 열려 있을 뿐 내부의 세계 혹은 아득히 먼 세계를 향해 있었다.

지금 데미안은 완전히 자신의 내면으로 몰입해 버렸다는 걸 알고 나는 전율했다.
나는 한 번도 이토록 고독해진 적이 없었다.
그와 나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고, 그는 내가 닿을 수 없는 존재였으며,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보다 내게서 먼 곳에 있었다.

이 꿈은 온전히 자기 안의 무의식 속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미안을 만나는 것,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은 온전히 자기 안으로 들어가야 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무의식은 정말 깊은 수준의 소통이기도 합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온전히 자기 내면으로 몰입하는 장면에 충격을 받습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기를 찾으려면 내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은 분명 완벽한 진실이고 정의인 명제들이지만, 이 모두를 선생님들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볼 수도 있는 거야.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대개 더 나은 가치를 갖게 돼.

데미안은 「카인」과 「야곱」의 이야기에서 싱클레어에게 다르게 보는 관점을 알려줍니다. 여기에 싱클레어는 충격을 받습니다. 온전히 내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부수어야 합니다. 그래서 데미안은 다르게 보기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새가 알을 깨고 날아가는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입니다. 아브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입니다. 데미안의 모습은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하며,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의 경우도 신비롭고 성스러운 이미지와 관능적인 이미지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데미안을 보면 지속적으로 양분되는 것이 하나로 합쳐진 이미지이며 이러한 이미지의 길로 갈 것을 추구합니다. 왜일까요? 양분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온전히 내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밝은 세계와 어둠의 세계에서 보듯이 이들 각각의 세계에 있는 것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의 아버지에게 데미안에게 들은 카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버립니다. 양분되어 하나의 편협한 생각에 갇혀서는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것에 기반을 두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흑백 사고 혹은 차별이 그런 것이죠.

 

그들은 이상이 아닌 이상에 매달려서는 새로운 이상을 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멩이를 던져 대는 거야.

어두운 것과 밝은 것을 모두 인정하고, 너와 나를 인정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인정하고 그저 온전히 나 자신의 상처와 내면의 어두운 면까지 모두 받아들이고 진정한 나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진정한 나는 나 자신일 뿐이지 이분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새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하고 하나의 세계를 부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힘든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힘든 것임을 알기에 싱클레어는 소설 데미안의 첫 문장에서 이것을 살기가 너무나도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연대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알게 됨으로써 새롭게 탄생된 것인데, 한참 동안 세계를 변형시킬 수 있는 거야. 지금 연대로 보이는 것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지. 인간들은 서로 두렵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도망치고 있어.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을 갑니다. 데미안은 연대라는 더 넓은 차원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싱클레어도 자기 자신을 찾고 이 길을 가겠지요. 그리고 수많은 다른 싱클레어들이 모여 진정한 연대를 이룰 것입니다. 이 연대는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용서하며, 더 나은 세계로의 변형시킬 것입니다.

 

그땐 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쉽게 말이나 기차를 타고 갈 수 없을 거야. 그럴 때 너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너의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어?

마지막에 데미안은 떠납니다. 다음에 부른다면 쉽게 오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인 싱클레어는 자기 내부에 귀 기울이면 데미안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결별하고 그 어려운 길을 걸어간 영웅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더 잘하는 누군가가 됩니다. 이는 인류의 꿈이기도 하며 동시에 신화적 이미지입니다. 이 길은 힘든 길이지만 싱클레어가 걸어갔듯이 우리들도 그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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