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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및 짧은 감상]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를 보았는데 영화 감상 후 정말 극찬했습니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를 만나다니 정말 행복합니다. 동화, 환상을 소재로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아름답기만 한 환상의 이미지가 아닌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와 이미지를 내재하고 있으며 이는 현실적 잔혹함을 더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영화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판타지적 요소가 현실과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상 속의 이미지를 현실과 묶어둡니다. 동시에 신화적인 이미지의 적용은 영화를 더욱 신비로우면서도 그 어둠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이 때문에 결말에 주인공 오필리아의 선택은 더욱 숭고한 희망, 영원, 강렬한 재탄생의 이미지를 전하며 마무리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판의 미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래는 영화의 감상 후 생각한 판의 미로에 대한 해석으로 영화를 본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판의 미로 해석]

영화의 배경과 등장인물의 상징

판의 미로는 과거 스페인 내전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시대의 잔혹함과 무자비한 권력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비달입니다.

 

영화에서 비달이 어느 부자의 생을 빼앗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오필리아의 어머니가 그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비달은 그녀에게 자신의 체면을 위해 앉아서 가라고 합니다. 그녀는 걸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부인과 아이 중 선택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면 주저 없이 아이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가진 시계처럼 비달은 기계 같이 차갑고 잔혹한 인물이며 권력자임과 동시에 인간적인 것이 결여된 잔혹한 권력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비달을 하나의 억압과 폭력 그리고 인간성의 부재를 나타내는 지배의 상징에 더해 판의 미로는 추가적으로 세 가지 인간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주인공 오필리아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입니다. 비달의 아내인 그녀와 마을 사람들은 힘에 의해 포섭된 존재로, 복종을 선택해 이익을 얻는 대가로 자유의지를 잃은 사람들이죠. 어떤 면에서 보자면 오필리아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딸 오필리아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오필리아에게 “언젠가 어른이 되면 너도 이해할 거야”라고 하는 말, 그리고 동화 속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며 그녀를 회복시켜주던 신비한 맨드레이크를 불에 태워버리는 장면은 그녀를 잘 표현합니다.

 

다른 한 축은 저항 세력입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비달에게 저항합니다. 그 수단은 비달과 같은 힘을 이용한 저항입니다. 영화에서 오필리아가 저항 세력을 돕는 메르세데스에게 요정을 믿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메르세데스는 어렸을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두 축으로 보건대 세상은 상상력을 잃었습니다. 오필리아 이외에는 그 누구도 동화 속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판의 미로에서 등장하는 세상은 환상, 판타지, 동화를 잃은 세상이며 존재하는 것은 그저 냉혹한 현실뿐입니다. 오필리아의 어머니가 아플 때 그녀를 편하게 해 준 것은 환상 속의 식물인데 말이죠.

 

그리고 나머지 한 축이 주인공 오필리아입니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환상 속의 이야기를 갈망하고 믿습니다. 판의 미로의 이야기가 되는 무대는 무자비한 권력의 중심인 비달의 저택이며 동시에 저항군과의 격전지입니다. 가장 위험한 곳, 즉 가장 차갑고 냉혹한 현실의 한가운데에서 오필리아 같은 어린 소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판의 미로가 치열한 대립이 벌어지는 잔혹한 현실의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하고 이곳에 판이 미로가 있고 동시에 오필리아의 환상이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러한 장소이기에 더욱 간절히 다른 세상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 이러한 동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참혹한 현실의 어둠입니다.

 

후술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최초 오필리아의 선택은 도피였지만 이후 판의 시련을 헤쳐나가면서 도피가 아닌 순례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가 됩니다.

 

참고로 오필리아라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로 비극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판의 미로의 주인공 오필리아 역시 비극적 운명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영화에서 오필리아가 태어날 동생에게 푸른색의 마법의 장미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있는데 햄릿에서 그녀의 오빠는 오필리아를 5월의 장미라고 불렀었습니다.)

 

미로와 첫 번째 시련

판의 미로 해석은 미로로부터 출발합니다. 영화 제목 Pan's Labyrinth에서 Labyrinth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미궁을 뜻하는 말로, 대표적으로 테세우스의 크레타 미궁 신화가 있습니다. 신화적이고 상징적 이미지로서 이 미로는 시련을 극복하고 깨달음에 이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판의 미로 역시 오필리아가 세 가지 시련을 거쳐 깨달음과 정신적으로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것 동시에 자신을 찾는 것의 의미를 지닙니다.

 

오필리아의 첫 번째 임무는 시들어버린 무화과나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 신비로운 생명체들은 서로를 돌보며 무화과나무에 살고 있었는데 괴물 두꺼비가 나타나 나무의 뿌리에 살면서 나무를 못살게 굴어 시들어버렸다고 합니다.

 

오필리아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 두꺼비가 삼킨 황금 열쇠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합니다.

 

과거의 무화과 나무(왼쪽) 그리고 현재(오른쪽)

첫 번째 시련은 굉장히 비유적이면서도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무화과나무는 과거 찬란했던 스페인을 나타냅니다. 신비로운 존재들이 나무 그들에 살았다는 것은 과거 시대는 동화 같은 환상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두꺼비로 인해 나무가 시들어버렸는데 이 두꺼비는 스페인에 인간성이 부재한 힘에 의한 지배가 들어섰고 나라가 쇠퇴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민중들입니다.

 

새로운 지배의 상징적인 관점을 인물로 치환하면 이 두꺼비는 비달, 무화과나무는 오필리아의 어머니로 환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비달의 아이를 가진 덕분에 힘들어하고 열에 시달립니다.

 

오필리아가 "이렇게 사는 거 부끄럽지 않니?"라고 두꺼비에게 말하는 것은 비달에게 하는 말과 통합니다. 결국 시련은 판타지가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시련

두 번째 시련은 창백한 괴물의 집에 가서 그의 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창백한 괴물은 굉장히 상징적입니다. 그의 외면은 새하얗고 흉측하며, 눈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식탁에는 호화로운 음식들이 가득합니다.

 

괴물의 방에 쌓여 있는 아이들의 신발과 장식된 벽화의 그림으로 유추해보면, 그의 호화로운 식탁의 음식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필리아가 금기를 어기고 음식을 먹자 괴물은 손에 눈을 붙이고 그녀에게 실제적인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자 괴물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그가 손에 눈을 붙이고 손을 펼 때 손의 모습은 왕관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방의 벽화와 쌓여 있는 신발들을 종합해보면 괴물은 잔혹하고 인간성을 잃은 권력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식탁의 호화스러운 음식들은 무고한 이들의 희생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이는 스페인에 뿌리내린 것, 오필리아가 마주하는 지금의 혹독한 현실과 같으며 이 시련 역시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두 번째 문을 열라고 나와 있으나 정답은 오필리아가 선택한 첫 번째 문

두 번째 시련은 판의 미로 전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위의 그림처럼 오필리아의 동화책은 창백한 괴물의 집에서 두 번째 문을 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요정들 역시 두 번째 문을 가리키죠. 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문이 정답이 아니라고 판단한 그녀는 가장 왼쪽에 위치한 문을 엽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었습니다. 스스로의 판단, 본능에 가까운 그녀의 행동은 정답으로 이어졌고 내적으로 자아가 싹트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경고를 무시하고 식탁 위의 음식을 먹게 만드는 것, 즉 금기를 어기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그 대가로 두 요정은 창백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비극을 초래하였으며, 그녀 또한 제때 현실로 돌아오지 못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모든 것은 그녀의 책임인 것입니다. 두 번째 시련에서 그녀는 책임이라는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세 번째 시련

세 번째 시련에서 판은 오필리아에게 그녀의 동생을 넘겨달라고 합니다. 지하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동생의 한 방울이 필요하고 이것이 마지막 임무라고 판은 말합니다.

 

판이 가지고 있는 검은 그녀가 창백한 괴물의 시련에서 얻은 것입니다. 괴물 방의 벽화에서 보았듯, 그는 이것으로 공포스러운 지배를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궁극적으로 판은 창백한 괴물과 같이 그녀에게 무고한 타인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을 무화과나무 같이 시들게 한 것은 다른 사람의 희생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필리아는 단호하게 판에게 안돼라고 말하며 동생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는 이 냉혹한 현실에 대한 도피로 환상의 세계를 갈망하고 판을 만나 그곳에 들어갑니다. 판이 그녀에게 공주라고 하자 그녀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판이 내리는 임무를 아무런 의문 없이 따르기만 하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스스로를 동화 속 공주라고 믿었던 그녀는 시련을 거치며 자아가 깨어나고 스스로의 의지로 판단할 수 있는 내면적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려 하는 의지이고 동시에 부당한 것에 굴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판의 미로 결말에 이르러 그녀는 자기희생을 통해 스스로 지하세계의 문을 엽니다. 그녀의 마지막 시련 역시 타인의 희생과 자기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정확하게 현실과 이어져 공명합니다.

 

환상과 현실의 이어짐

오필리아가 동생의 희생을 단호하게 거부한 직후, 이는 현실과 공명해 그녀를 추격해온 비달과 조우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주한 현실에서 판에게 겪었던 시련과 같은 상황이 연출됩니다.

 

비달은 오필리아에게 자신의 아이를 돌려달라고 합니다. 판에게 했던 것처럼 오필리아는 이를 거부합니다. 이는 파멸적인 현실을 만든 권력에 단호히 반기를 들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로 이어집니다.

 

비달에게 잡혀 포로가 된 저항세력 중 한 명이 입을 다물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 역시 환상과 현실이 공명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희생이라는 이 모토는 동화와 현실이 이어져 있습니다.

 

[마치며 - 결말]

판의 미로 해석은 이렇듯 오필리아가 수행하는 임무를 통한 그녀의 성장이 현실과 공명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련을 모두 통과한 그녀는 자기희생을 통해 지하세계로 들어가 진정한 공주가 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고귀하고 영웅적 결말이며, 그녀의 이러한 자기희생은 불합리한 것들로부터의 불복종임과 동시에 숭고하고 도덕적으로 높은 차원을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오필리아는 이 영화에서 무력을 택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오필리아는 햄릿의 주인공과 같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판의 제안을 거절하고 공주가 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러한 영웅적이면서 인간애적인 결정이 되려 그녀가 공주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첫 내레이션에서 나오듯 오필리아는 지하왕국에서 모두가 기다려 온 존재입니다. 오필리아의 비극은 기다려온 존재의 귀환이 되고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는 희망의 꽃으로 환원됩니다.

 

오필리아가 남긴 지상의 흔적은 소중한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숭고한 삶의 기록을 기억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함을 판의 미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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