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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 리뷰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은 무라타 사야카의 장편 소설입니다. 이전 무라타 사야카의 다른 소설들을 읽고 상당히 감명받아서 최근 다른 작품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의 감상을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기대 그 이상이었습니다. 무척이나 섬세한 표현과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 없는 멋진 상징과 비유 그리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이 소설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탄탄한 서사가 굉장히 인상 깊습니다.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는 어디든 다 비슷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학교든 직장이든 여타 공동체 사회에 관계없이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항상 위아래가 존재하고 공동체의 룰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비단 학교라는 사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룰, 혹은 제도라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면서도 그 속에 부조리가 있다면 이 부조리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의 주인공의 이름은 다니자와 유카입니다. 그녀는 유치원 때부터 이 뉴타운 마을에 살았습니다. 이야기는 두 친구 와카바와 노부코와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무난했던 이들의 관계가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세 친구들은 중학교에서 같은 반이 되는 데, 이 중학교 교실은 알게 모르게 서열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반에서 가장 예쁘다고 묘사되는 오가와를 필두로 한 그룹은 상위 그룹으로 묘사되며 주인공인 유카는 중위 그룹, 노부코는 하위 그룹으로 들어갑니다.

 

오가와는 반에서 가장 잘나가는 여자애라, 그녀의 말 한마디로 교실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는 했다.

와카바는 어느샌가 초등학교 때는 듣지 못했던 삐거덕거리는 목소리로 웃고 있었다. 저렇게 애를 쓰는 와카바를 보면 상위 그룹도 나름대로 고충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카바는) 예뻐졌는데도 더는 반짝거리지 않았다. 오가와와 사쿠마에게 매달리는 듯한 그 필사적인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중위 그룹과 하위 그룹은 항상 상위 그룹의 눈치를 보며 오가와의 말과 행동에 따라 그룹에서 밀려나가거나 소외되기도 하는 부조리를 느낍니다. 상위 그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특히 하위 그룹에 속한 노부코는 같은 하위 그룹의 사람 이외에는 다른 친구들과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하며, 하위 그룹의 사람들은 상위 그룹 사람들의 놀림의 대상이 됩니다. 중위 그룹은 상위 그룹이 무서워 이들의 장난을 방관하며 하위 그룹 사람들과 어울렸다가 자신들도 하위그룹으로 엮일까 봐 상대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교실에서 모나지 않게 처신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교실 안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나. 타인의 가치관을 바보 취급하지만 그 가치관으로 재단되는 게 두려워서 남들 앞에서 노부코와 말도 섞지 않았던 나. 그런 내가 이노우에보다, 아라키보다, 오가와보다, 노부코보다 사실은 훨씬 끔찍했다.

 

주인공인 유카는 중위 그룹에서 방관하지만 결국은 교실 밖으로, 완전한 아웃사이더로 밀려납니다.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은 주인공인 유카가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서 어떻게 자기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뉴타운입니다. 뉴타운은 하나의 계획도시입니다. 첫 문장이 의미가 있는데요 이 소설은 첫 문장에서 멀리서 마을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이는 뉴타운이 확장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뉴타운은 완성된 도면이 있고 이 도면에 따라 공사가 진행됩니다.

 

모리카리라는 지명처럼 큰 숲들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인공적인 가로수들이 청결한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모리카리: 숲을 벤다는 뜻. 

지금 크레인이 부수는 건 작년까지 눈이 내리면 친구들과 썰매를 들고 모여 놀았던 작은 뒷동산이었다.
놀이터가 없어졌다며 그토록 슬퍼하던 이부키도 지금은 그 공원 한가운데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철조망 안쪽에서, 다 같이 썰매를 타고 놀았던 그 시절의 잔상을 아직도 찾고 있는데.

 

이는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완성된 도면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을 나타내며, 이 뉴타운이 완성된 도면으로 나아가듯 우리들 역시 이 완성되어 있는 사회 혹은 제도 속으로 갈 수밖에 없음의 비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마을이 확장되면서 어릴 적 추억의 장소들이 사라지고 어른들이 계획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마을에는 정을 붙이기 힘든 것, 마을이 싫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저 하얀 피부 밑에서는 이미 도면대로 신체가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전학 온 두 명의 여학생이 그렇게 교실에 흡수되어가는 것도 이미 지겹도록 보아온 광경이었다. 한 명은 위에서 세 번째 그룹에, 다른 한 명은 오가와의 눈에 들어 최상위 그룹에 소속되어 교실에 울려 처지는 목소리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뉴타운은 말 그대로 새로 짓고 확장되어가는 도시이기 때문에 전학생이 많습니다. 뉴타운에 사는 유카는 전학생들이 부조리한 제도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모습들을 계속 보아왔습니다.  

 

신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카는 우리들의 신체 역시 이 마을처럼 도면대로 어른의 형태를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들이 만들어지고 정해진 사회의 틀로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죠.

 

중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도 일부러 크게 맞춘 교복은 아직도 헐렁해서, 허리가 금방 돌아가고는 했다.

노부코는 소름 끼칠 정도로 초등학교 시절과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주인공은 유독 신체가 어른들의 도면과 같은 신체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콤플렉스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미 학교라는 틀, 서열이 존재하는 곳에 발을 디뎠지만 신체는 그만큼 자라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불균형입니다. 이 불균형은 어찌 보면 이 부조리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임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노부코 역시 초등학교 시절과 똑같은 목소리라고 합니다.

 

반면 와카바의 경우는 가장 어른스러운 체형입니다. 가장 도면과 가까운 와카바가 가장 상위 그룹에 있으며 가장 서열 사회에 적응하려 애쓴다고 할까요.

 

다른 의미로는 유카는 이 부조리한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자신이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것이 아직 도면대로 되지 않은 신체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흰색과 회색밖에 없는 팔레트에 갑자기 수많은 그림물감을 짜놓은 듯, 나는 낯선 색채들로 가득한 광경에 눈앞이 어질했다.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이부키는 늘 쉽게 마법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때 곤경에 빠진 나를 구해준 것처럼, 언제나 간단히 나를 우울 밖으로 데려간다.

 

그녀와 동급생이 이부키는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긍정의 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소설 데미안과 같다고 할까요.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기라면, 이부키는 유카를 사랑하는 긍정의 자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부키의 집은 유카의 집과 구조가 완전히 같다는 것도 역시 상징적입니다.

 

자기를 싫어하는 유카는 이부키를 일그러진 애정과 강압의 형태로 대합니다.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부키는 여전히 유카를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부키는 '행복이'라고 불리며, 이부키는 의식하지 않지만 반에서는 상위 그룹에 위치해 있습니다. 때문에 유카는 밝은 세계에서는 이부키에 말도 걸지 말라고 합니다. 오가와가 이부키를 마음에 들어해서 이부키와 친하게 지냈다가는 자신에게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 부조리한 서열관계가 자기의 긍정적인 또 다른 자기와의 관계를 막고 있기 때문에 일그러진 관계를 맺는 게 아닐지.

 

 두 다리로 바닥을 차며, 어깨를 들썩이며 성큼성큼 걸어간다. 감정이 활활 타오르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작고 푸르른 불꽃 같은 노부코가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문득 고개를 들자 마을의 청결한 하얀빛이 여느 때보다 선연하게 보였다. 
 노부코가 온 마을을 물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샌가 저주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었다. 교실을 지배하는 가치관에서 버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거기서 해방된 것이다

 

이러한 제도 속에서 방황하던 유카는 결국 제도에서 완전히 배척되어 진정한 이방인이 되고서야, 그리고 끝까지 교실에서 상위 그룹에 저항하는 노부코를 보고 나서야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고 진심으로 이부키를 마주 보고 대화하게 됩니다.

 

결국 이 사회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은 이 책에서 나오는 비유처럼 부조리를 묻어버리고 때로는 저항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욕망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탈락되는 한이 있더라도 부조리에는 저항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무라타 사야카의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은 이 부조리함에 녹아들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부조리함을 거부하고 이 사회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종의 하나의 지침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조리한 제도를 뒤로하고,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고 자신을 마주 볼 때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자신의 성장이 멈춤과 동시에 공사가 중단되었던 뉴타운이지만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온전히 지켜냄에 따라 뉴타운은 자유롭게 확장되는 새로운 가능성의 길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죠.

 

마을 커뮤니티 센터에 있던 모형은 이미 철거되었다. 자유롭게 확장하는 마을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아빠의 말대로 막혀 있던 터널은 뚫렸고, 그 끝으로는 낯선 새하얀 길이 뻗어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을 삼켰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선연한 하얀 길이 똑바로 마을을 관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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