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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한 세상은 없었다.

저는 미스터리 소설 계열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도 미스터리 계열을 종종 읽곤 하는데 노리즈키 린타로의 요리코를 위해는 가장 최근에 읽은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인기 추리물인데 다 일고 나서 역시 인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개인적으로는 많이 쓰라렸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추리물은 보통 어떤 느낌이냐고 하면,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이 사건의 진정한 흑막이 밝혀졌을 때, 사건이 해결되는 짜릿함과 통쾌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느 추리물처럼 통쾌함이 아니라 아프고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그저 이 결말을 모르는 편이 나았지 않을까 하는 후회의 감정이 들기도 했고요.

 

 

1989년 8월 22일

요리코가 죽었다.

 

이 소설의 시작은 요리코의 아버지인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로 시작합니다. 수기의 첫 장은 딸인 요리코의 죽음을 알리는 아련한 문장과 함께 시작합니다. 요리코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요리코의 아버지는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아다니게 되고 끝내 복수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복수로 인한 자신의 죄에 대해 스스로의 결말을 지으려고 합니다. 결국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지만요. 아뇨 어떻게 보면 끝내는 성공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해결사로 등장한 린타로는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요리코의 아버지의 수기에서 요리코와 치정을 일으킨 선생님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받은 피해자는 그의 담임이었습니다. 요리코가 다니던 학교는 명문이라 불리는 사이메이 여학교입니다. 이 사이메이 여학원의 이사장의 오빠는 유력 정치인입니다. 그들은 이 사건으로 학교의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기 위해 해결사로 린타로를 부릅니다. 이렇게 린타로는 사건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린타로는 이 사건의 끝에 다다르게 됩니다.

 

린타로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는 제삼자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추리물의 당연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아야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수많은 치정과 이해관계 속에서 린타로가 이 결말에 다다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유일하게 린타로만이 요리코에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이 거대한 사건의 흐름 속에 왜 아무도 요리코를 보지 않았던 걸까요. 이는 가족이라는 삶의 울타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요리코의 아버지인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에 속았던 것은 당연하게도 요리코에게는 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복수극이라고 하는 저 거짓 수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결코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파국을 이끈 관념의 괴물인 어머니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 모든 이해관계와 치정을 걷어내고 요리코의 길을 따라간 린타로만이 진실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린타로도 느꼈지만 그 진실은 그에게도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작가가 왜 이렇게 요리코를 그려냈는지,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왜 이런 충격적이고도 비현실 적일 수도 있는 사건의 내막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간의 관계의 부재와 증오는 이런 괴물과 같은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리코의 가족은 어쩌면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요리코를 위했다면 이러한 모습을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린타로의 말처럼 최초의 비극적인 사건은 그저 아버지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달려갔던 어린 요리코의 순수함이었습니다. 결국 이 비극은 용서와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말로는 요리코를 위했던 세상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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