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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래디에이터 - 내세로 돌아간 검투사의 이야기

최근 넷플릭스에서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과거 개봉 때 본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도 탁월한 전투장면과 로마의 웅장함 그리고 주인공 막시무스의 영웅적 삶에 굉장히 감명받았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느낌은 다시 본 지금도 여전한데 정말 매력적인 대제국 시대의 영웅서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래디에이터는 멋지고 웅장한 대체역사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다른 의미로도 굉장히 특이합니다. 바로 영화의 이야기가 완전한 선형적 형태가 아니라는 것으로, 이는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입니다.

 

아래 글은 이에 대한 저의 생각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막시무스

 

영화를 보면 세 번의 선형 붕괴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모두 주인공 막시무스가 죽음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사후세계의 이미지이며 동시에 해당 이미지를 보고 추측하건대 그의 생은 사실 이미 운명 지어져 있으며, 조금 더 나아가자면 죽음을 등지고 살아갔던 한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내세에서 현세에서 겪었던 일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레디에이터는 유독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산재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게르만족과의 전투로 시작하는데 전쟁터는 극명하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이죠. 그리고 그는 이후 노예 검투사가 됩니다.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는 역시나 자신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오프닝을 보면 주인공 막시무스가 밀밭에서 손으로 밀을 하나하나 훑으며 지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밀밭이 서구권에서 천국을 상징한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이야기죠. 그리고 해당 장면은 영화의 중간중간에도 등장하며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도 등장하는데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우선 이 영화의 선형적 이야기구조를 깨는 첫 번째 장면은 황제가 아들에게 암살당하고 막시무스가 처형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장면에서 발생합니다. 이때 갑자기 화면이 잿빛으로 물들며 자신이 사는 집의 풍경과 가족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동시에 자신의 집을 향해 가는 길에 오프닝 장면 때와 마찬가지로 밀밭을 손으로 훑으면서 지나가는데 가족들이 그를 반기는 장면이 나오죠.

 

이 갑작스러운 이미지는 시간적 순서, 즉 선형적인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당 장면은 글래디에이터 결말입니다. 즉 가족과 막시무스 자신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잿빛의 해당 이미지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막시무스가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으로 그곳은 가족의 품이며 동시에 내세입니다.

 

 

특히 달리는 말발굽은 현실과 교차하면서 그와 그의 가족이 짓밟힐 것이라는 이미지로 나타나죠.

 

결국 현재 시점에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살아 있지만, 즉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이미 생의 끝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삶의 끝은 사실상 이미 운명 지어져 있는 것으로 달리 말하자면 비극적인 삶에서 죽음으로 운명 지어진 한 사내의 이야기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주인공이 영화 내내 죽음에 초연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이렇게 죽음을 등지고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것이 현세에서의 삶조차 초연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점입니다. 오히려 죽음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눈앞에 놓인 현실의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영웅으로 묘사되는 것이죠.

 

막시무스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치열한 전쟁터에서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며 좌절하지 않고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는 인물입니다. 복수까지도 말이죠. 심지어 황제가 언제 집에 가보았냐고 질문했을 때 그는 2년 264일 전이라 답합니다. 가족에게 돌아가길 기약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는 이는 절대로 저런 답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며 따르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인 것이죠.

 

요약하자면 첫 번째 사후세계의 이미지는 결국 이 영화를 시간순에서 비껴가게 합니다. 이는 결국 선형적 이야기가 아닌, 이미 운명 지어진 이야기이며 어쩌면 사후세계에 있는 자가 현세에서 겪었던 삶을 노래하는 것일 가능성 역시 열어두게 되는 것이죠.

 

 

글래디에이터에서 두 번째 갑작스러운 이미지는 그가 가족을 묻고 잠든 후 노예로 끌려갈 때 나타납니다. 이 두 번째 시간순의 붕괴는 더 강렬한 느낌을 주죠. 그가 사후세계로의 문으로 접근하려는데 밀밭이 등장하면서 밀을 손으로 훑는 장면이 바닥의 돌이 손에 닿는 것으로 연결되며 이로 인해 깨어나며 현실로 돌아옵니다.

 

미래는 암시하는 두 번째 붕괴
실제로 맞이하는 미래

 

그리고 사후세계에서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며 다시 만날 수 있어란 말이 나오며, 동시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묶여 있는 그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묶여 있는 막시무스의 형상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황제와 콜로세움에서 대결을 벌이기 전의 장면으로 이후에 있을 일을 사전에 암시하는 것이죠.

 

혹시 말을 타고 가다가 따사로운 태양 아래서 혼자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마라. 그곳은 바로 천국이며 제군은 이미 죽은 것이다.
by 막시무스

 

아직 현세에서 다하지 못한 일(복수)이 남아 있으며 이를 완수하기 위해 남는 것으로 두 번째 붕괴에서 태양 아래 달리는 말에는 아직 그가 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막시무스의 죽음 직전의 순간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사후세계의 존재와 그의 필연적 생의 끝, 그리고 글래디에이터 이야기의 끝을 암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의 순간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꿈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의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 참 묘한 점입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그 순간순간의 기억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우리를 감정적으로 차오르게 한다는 점이 참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황제와의 전투 후 죽음에 이르러 드디어 세 번째 이미지로서 내세로의 문이 열리죠. 그 문 너머에는 자신의 집이 있고 막시무스는 밀밭을 걸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가 바라던 대로 말이죠.

 

 

그런데 이 세 번째 이미지가 굉장히 미묘하게 느껴지는데요 영화 글래디에이터 영화 초반에 막시무스가 황제와 대화를 할 때 황제는 주인공에게 그의 집에 대해서 말해보라 합니다. 그러자 막시무스는 그의 집을 이상향처럼 표현합니다. 어쩌면 그의 집은 생의 너머에 있는 이상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를 처음의 시간순의 붕괴와 이어 생각해 보면 사후세계에서 현세를 살고 다시 집(사후세계)으로 돌아오면서 현세에서 있었던 일을 노래하며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웅적인 그의 삶을 말이죠.

 

결국 이 이 여정의 끝은 자신의 집으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가 돌아가는 곳은 사후세계입니다.

 

이렇듯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선형적인 시간순의 붕괴로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멋진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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