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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래비티 줄거리 포함 해석 리뷰 – 중력은 삶의 기반이다

[카페인] 2021. 12. 19.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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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래비티 줄거리 포함 해석 리뷰 –  중력은 삶의 기반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 비행사인 주인공 라이언 스톤이 우주에서 잔해 폭풍에 휩쓸려 우주선이 난파되는 재난에 휩쓸리는 것을 그린 재난 영화입니다.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 주인공인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으며 동시에 삶의 실존을 표현한 영화입니다.

 

감상평을 말하자면 진실로 역사에 길이 남을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가는 장면, 그리고 지상에 발을 디디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걸어가는 장면은 인간의 실존이 얼마나 밀도 높고 위대한 것인지를 체험하게 합니다.

 

아래는 그래비티 줄거리와 이에 관한 해석을 적은 글입니다.

 

영화 그래비티 줄거리 포함 해석

영화 그래비티 줄거리는 우주에서 일어난 재난을 극복해가는 과정과 동시에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그래비티 해석 역시 이러한 자신을 찾아가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라이언 스톤은 우주 비행사로 우주에서 수리 작업을 하던 중 폭발한 위성의 잔해 폭풍에 휘말립니다. 이로 인해 우주선은 난파되고 그녀와 동료 맷 코왈스키 두 사람만 살아남게 됩니다.

 

라이언 스톤:(왼쪽), 맷 코왈스키(오른쪽)

 

“우주를 표류하고 있어요 들려요?”

 

잔해 폭풍에 휩쓸린 그녀는 우주를 표류합니다. 우주를 표류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은 주인공의 심적 상태에 대한 은유입니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의 모든 대화는 의미의 작용과 복선을 가지니 유의해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라이언은 어린 딸과 사별하고 감정적으로 표류해왔습니다. 첫 재난을 만나고 우주에서 표류할 때 라이언이 표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그녀의 심적 상태를 빗댄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재난이 발생한 공간이 지상이 아닌 끝없고 무한한 우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우주라는 공간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섬뜩한 공포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생존에 대한 갈망을 잃거나 표류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 거대한 어둠으로 덮인 공간은 신비롭고 무한하지만 역설적으로 폐쇄적인 공포를 동반하며 섬뜩함을 느낄 정도입니다.

 

표류하는 라이언이 어둠에 사라지는 장면

영화에서 이를 잘 나타내 주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처음 주인공이 표류를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주인공 라이언은 고정된 카메라 시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멀어지는 만큼 그녀는 우주에서 하나의 점으로 나타나게 되고 결국 어둠으로 바뀌죠.

 

존재의 소멸과 같은 장면을 은유하는 이 장면은 정말 놀랍습니다. 무한성을 가진 이 공간에서의 표류 역시 자신을 잃게 되는 무서운 공간입니다.

 

코왈스키: 스톤 들려?

라이언: 코왈스키 나 여기 있어요.

라이언이 표류할 때 코왈스키가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그녀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답하자 멀어져 어둠으로 사라졌던 라이언이 다시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러한 재난의 시작 부분에서 두 사람의 대화와 동반되는 장면의 연속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카메라로부터 완전히 어둠 속으로 멀어져 사라질뻔했던 라이언은 자신을 잃지 않고 삶의 의지가 있음 코왈스키에게 답하였을 때 사라졌던 그녀는 카메라 쪽으로 끌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중력, 즉 끌어당기는 힘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표현입니다.

 

그래비티는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재난은 생의 위협에 대한 직면을 주요한 소재로 하며 동시에 본능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최대한 끌어올리게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재난이라는 상황은 불합리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후에 그들의 여정에서도 보이듯 재난은 연속되고 불합리한 것들의 순간순간에 우리의 삶이 포위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는 재난, 즉 생의 위협 속에서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고 그 시점에 그리고 궁극에는 질문을 던집니다. 살아야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존재는 이 광활하고 무한한 우주 공간 앞에서 본질적으로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과 이러한 재난이라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찰,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 찾아가는 것입니다.

 

멀어져가는 코왈스키

생존한 라이언과 코왈스키는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근처의 다른 ISS(우주 정거장)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코왈스키는 ISS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밀려나게 됩니다. 라이언은 그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라이언 날 놔.

싫어요. 절대로 안 놓을 거예요.

당신 결정이 아니야. 놓을 줄도 알아야 돼.

코왈스키는 이러다가는 두 사람 다 우주로 떠밀려갈 거라고 하며 스스로 연결고리를 풀고 우주로 떠밀려갑니다. 라이언만이라도 살리려는 코왈스키의 선택이었습니다.

 

이 대화는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코왈스키는 라이언에게 놓을 줄도 알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라이언이 겪은 마음 상태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녀는 어린 딸을 잃고 심정적으로 표류하고 있는데 코왈스키의 선택과 그가 하는 말은 보내는 법도 배워야 된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리하여 혼자가 된 그녀는 ISS 내부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라이언이 웅크린 자세로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곧 세상에 나올 아이의 모습을 연상케 하여 그녀의 재탄생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ISS에 불이 붙습니다. 그녀는 그리하여 급히 탈출을 시도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시 잔해 폭풍을 만납니다. 연속되는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죠. 어찌어찌 소유즈에 탑승하여 위험을 피한 라이언은 다른 ISS로 가려고 하지만 우주선의 연료 부족으로 표류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지구와 통신 시도를 했으나 엉뚱한 곳으로 연결하게 되고 그녀는 그곳에서 어린 아기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나도 우리 아기에게 들려주곤 했는데. 빨리 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어떠한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라이언은 아이의 소리를 듣고 우주선 내의 산소를 빼내며 삶을 놓으려 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과 그 끝의 대비가 절묘합니다.

 

하지만 삶의 시작과 그 끝은 서로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는 삶에 내재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 또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삶을 놓으려던 차 갑자기 코왈스키가 등장합니다. 물론 환영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장면에서 너무나도 철학적인 말을 남깁니다.

 

“착륙도 발사와 같은 거야. 안 배웠어?”

“자식을 잃는 것보다 힘든 게 어딨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의 선택이야.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너무나도 중요한 말들입니다. 코왈스키의 말은 주인공이 지구로 갈 수 있는 해결책임과 동시에 삶의 깨달음이 내재된 명문입니다.

 

코왈스키는 그녀에게 놓을 줄도 알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상실로 인한 그 슬픔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주를 표류하는 것입니다. 끝없이 멀어져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한 그 남자는 그녀에게 다시 나타났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진혼곡

결국 어떤 소중한 잃는다고 해서 그것은 자기에게서 영원히 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상실로 인해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코왈스키는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것은 언제나 나의 삶과 함께하고 있고 그것은 나를 돌아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로 릴케의 진혼곡이 생각나게 합니다)

 

따라서 그녀는 우주라는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에서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력은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우주에서는, 즉 지구로부터 멀어질수록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번 멀어지면 서로 끝없이 멀어지는 것이죠.

 

우리가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멀어져 자신을 잃어갈 뿐입니다.

 

우리를 지구로 당기는 힘, 우리를 짓눌러 이 땅에 서있을 수 있게 하는 중력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자신이게 하는 삶의 핵심이라는 것을 그래비티는 말해줍니다.

 

코왈스키는 착륙도 발사도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원리를 깨달은 라이언은 가능성을 획득하고 결국 지구로 돌아오는 데 성공합니다.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은 타오르는 삶의 열정을 보는 듯 장엄하기까지 하며, 바다에서 다시 육지로 올라오기 위해 헤엄치는 장면은 새로운 삶의 탄생의 은유입니다.

 

헝클어진 갈색 머리의 어린아이를 만나게 될 거예요.
이름은 새라에요.
엄만 포기하지 안 한다고 말해줘요.

 

코왈스키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놓을 줄도 알아야 된다고. 그렇습니다 그녀는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중력은 그녀가 놓은 것들을 다시 끌어당겨 그녀의 삶 속에 항상 함께일 테니까요. 라이언은 다시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육지에 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본 후 걸어 나갑니다. 우리는 위를 보며 우리를 무한한 세계로 해방시킬 수 있음과 동시에 땅에 발 디디면서 자기를 유한화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코왈스키가 말했듯 착륙과 발사는 같은 원리입니다.

 

이렇듯 그래비티는 우리의 삶이란 항상 중력과 함께 그렇게 걸어가는 것임을 표현한 역대 걸작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력이 삶의 기반인 것이죠. 이상으로 영화 그래비티 해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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