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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아메리칸 히스토리 X 해석 및 감상

[카페인] 2022. 12. 1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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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토니 케이 감독의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보았습니다. 에드워드 노튼 주역의 해당 영화는 아주 오래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 기회가 되어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감상하면서 그때와 지금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달라졌는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아메리칸 히스토리 X는 미국의 인종 갈등과 차별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매우 극단적인 내용과 그 메시지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부분 역시 우리의 어두운 역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어쩌면 우리의 미래에 보편적으로 일어날 비극이 될 수 있음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영화이죠.

 

에드워드 노튼의 소름 돋는 연기가 정말 일품인 영화로 편견과 차별이 우리를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지, 그리고 그 증오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명작입니다.

 

아래는 아메리칸 히스토리 X 해석 및 감상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석 및 감상 리뷰]

영화를 보면 과거 어떤 이가 남겼던,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이 뇌리를 스칩니다. 저는 이 말을 바꾸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이 있습니다. 인종이든 국적이든 지역이든 학력이든 혹은 약자에 대한 차별이든... 이러한 것들은 너무나도 많아서 셀 수 없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이다"  즉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과거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감독의 의도임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는 현재형으로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영화를 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흑백 화면과 컬러 화면입니다. 당연히 이 부분에 있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왜 흑백과 컬러인가? 감독이 어떤 화면은 흑백으로 처리하고 어떤 화면은 컬러로 해 놓은 데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흑백 사고 혹은 흑백논리라는 말을. 사전을 찾아보면 흑백논리의 정의는 이렇게 나옵니다.

 

모든 문제를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의 양 극단으로만 구분하고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려는 편중된 사고방식이나 논리.

(출처: 위키백과)

 

바로 이것이 이 영화의 문제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흑백 사고와 편견 그리고 그로 인한 인종차별. 감독은 이러한 부분을 의도하여 흑백 화면을 사용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컬러 화면은? 흑백 화면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컬러 화면은 작가가 나아가려는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보면 흑백 화면이 나오는 장면은 주인공 데릭의 과거 부분입니다. 이 시절의 데릭은 편견에 사로잡혀 갱단의 리더로서 인종 차별을 일삼고 결국 흑인을 해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흑백 화면은 편견을 나타내며, 이것은 편견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라보는 데릭의 시선을 반영함과 동시에 그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컬러 화면은 더 뜻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종차별의 편견에서 해방된 현재의 데릭의 모습을 나타내며, 이는 곧 컬러 화면으로 나타납니다. 즉 컬러 화면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나가는 다양성의 영역이며, 편견에서 해방된 데릭의 시선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죠.

 

흑인을 해한 데릭은 교도소로 가게 되는데 이는 이 영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이곳은 데릭이 처음으로 자신과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소이자 흑백 세계의 종언과 더불어 컬러의 세계, 즉 다양성의 세계로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데릭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흑인과 함께 일하게 됩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데릭이 본 것은 동료 흑인의 따뜻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복역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흑백 세계의 종언이자 동시에 다양성의 세계의 시작인 것이죠.

 

데릭이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는 날. 이날은 흑백 사고(편견, 인종차별주의)에서의 해방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컬러(다양성)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렇듯 해방된 데릭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몸부림치지만 결국 비극이 일어납니다. 데릭은 지난날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형을 따르고 행동도 형과 무척이나 닮은 동생 대니는 형의 지난날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형과 함께 새로운 나날을 준비해 갑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시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려는 순간... 자신이 해친 흑인 동생의 총에 대니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로 인해 비극이 다시 반복되어버린 것이죠.

 

동생 대니의 죽음을 본 데릭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 데릭 -

 

혹자는 왜 마지막까지 그들을 죄인으로 남겨두냐고 혹은 비극으로 남겨두냐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 역시 감독이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날 때 "데릭은 안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라 말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행했던 지난날의 과오 때문에 동생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저지른 과오와 그로 인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증오심은 끝나지 않은 비극의 연속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입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상처와 불신은 여전하고 그동안 쌓아온 증오의 고리가 너무나도 깊기 때문에 이것은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그 사이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과오를 인정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계속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이 증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절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 인상적인 장면들

아메리칸 히스토리 X 후반부에 데릭이 대니와 함께 자신의 과오를 청산하는 의미로 방을 정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후 샤워를 하러 가는데요 이 장면은 뭔가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대니와 과오를 청산 후 샤워를 하는 장면은 자신의 과오를 씻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샤워 후 거울 앞에서 문신을 손으로 짚으며 후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울은 반성과 자기 성찰을 상징하는 것으로, 데릭이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하고 반성하고 성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명장면 중 하나이죠.

 

[마치며]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목적의식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흑백 화면에서 컬러 화면으로 이동하는 것, 즉 편견의 흑백 사고가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는 컬러의 세상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대니의 "증오심은 없어져야만 한다"라는 대사는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말해줍니다.

 

즉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에서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였다고 즉, 과거형으로 적었던 것입니다. 대니의 바람처럼 이러한 증오의 고리는 끊어져야만 하고 이것이 과거형이 되었으면 하는 영화의 그리고 저의 바람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X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을 것입니다. 어두운 역사 혹은 차별과 편견에 물든 부끄러운 과오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어떤 방정식의 미지수 X.

 

이 방정식은 해를 구하기 힘든 고차원 방정식의 미지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정말로 간단한 일차 방정식의 미지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 방정식의 차수와 꼴을 만들어가는 것은 앞으로의 우리들에게 달린 일이 아닐까요?

 

만약 우리가 증오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이 방정식은 해를 구할 수 없는 방정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증오심의 고리를 끊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어쩌면 정말 간단한 일차 방정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답은 우리들 하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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