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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영화 해석 - 완벽을 향하여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 블랙스완을 보았습니다. 발레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극한의 심리 스릴러임과 동시에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예술 영화였는데요.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니나의 강박, 분열을 동반한 기괴하고 광기 어린 장면들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결말에 주인공 니니가 흑조를 연기하는 장면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는데요 정말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랙스완 영화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역시 완벽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습니다.

 

"I was perfect"

 

"전 완벽했어요"라며 니나가 모든 연기를 마치고 내뱉은 이 마지막 말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주인공 니나는 발레리나입니다. 어느 날 그녀는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 공연의 주연으로 발탁됩니다. 단, 이 공연은 기존의 백조의 호수 이야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바로 흑조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순수하고 착한 소녀가 백조 몸에 갇혀서 자유를 원하지만 진정한 사랑만이 저주를 풀 수 있다.

한 왕자의 사랑으로 백조의 바람은 거의 이루어질 뻔했지만

왕자가 사랑을 고백하기 전 백조와 꼭 닮은 흑조가 계략을 써 왕자를 유혹하고

망연자실한 백조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죽음 안에서 자유를 찾는다.

-블랙스완의 공연 내용-

 

보시다시피 해당 공연은 백조만이 아닌 흑조 역시 연기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블랙스완 영화는 백조와 흑조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완벽한 공연을 펼치기 위해 분투하는 니나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니나는 공연이 끝난 후 "전 완벽했어요"라 말합니다. 완벽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완벽이라는 것은 모든 것의 완성이며 동시에 끝이기도 합니다. 완벽 이후 무엇이 더 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없을 테니까요. 따라서 주인공 니나가 마지막에 생의 끝을 맞이해야 했던 것은 필연이 아닐까요? 완벽을 위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죽음 안에서 자유를 찾는다.

 

단장이 설명한 백조의 호수 공연 결말을 보면 종극에 죽음과 함께 자유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블랙스완 영화의 결말에서 니나가 생의 끝을 맞이해야만 했던 이유임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며 자유를 찾게 된 이유라 볼 수 있습니다. 복선이었던 것이죠. 

 

즉 영화는 공연의 결말이 완벽이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으며, 발레 공연에서 백조와 하나가 된 니나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를 구조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바로 죽음과 함께 해방되는 것입니다. 자유를 찾게 된 것이죠. 이것은 완벽을 이룬 것임과 동시에 필연적인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듯 니나는 항상 완벽을 추구해왔습니다. 일종의 강박적인 형식으로 말이죠. 백조로서 그녀는 완벽합니다. 하지만 흑조로서는 아니죠.

 

단장은 말합니다. 통제할 수 있다고 해서 완벽해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검은 백조를 완성하는 것은 통제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완벽을 위해서 그녀 속에 있는 블랙스완, 즉 검은 백조를 풀어헤쳐야만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보면 인간에게는 두 세계, 즉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있는데 블랙스완 영화 내에서 밝은 세계는 백조, 어두운 세계는 흑조의 영역으로 나타납니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니나가 이 무대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억압이라는 알을 깨고 어두운 세계를 해방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투쟁해야만 하죠. 이 영화에서 인물 간의 갈등 관계는 주로 여기서 비롯되며 그녀가 보는 강박, 환영 등의 이러한 기괴한 현상과 이미지들은 모두 이 틀을 깨기 위해 나타납니다.

 

우선 영화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밝은 세계에 해당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집이라는 공간은 그녀를 억압하는 공간입니다. 일반적으로 집은 가장 편안하고 안식을 위한 공간인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니나는 이 집에서 편안함이 아닌, 압박을 느끼고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상처를 입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sweetie girl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억압하고 감시하는 존재로 비치죠.

 

그리고 밝은 세계에서 그녀에게 어둠의 세계가 찾아오는 것을 차단(혹은 검열) 하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릴리가 니나의 집에 찾아왔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릴리를 차단하고 니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라 하죠. 니나가 어머니에 반항하여 문을 열었을 때야 비로소 릴리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르골을 보고 있는 니나.

백조의 호수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르골 속에서 춤추는 하얀 발레리나 인형 역시 그동안 백조로서의 정체성을 강요받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니나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밝은 세계의 숨 막히는 압박은 영화 내에서 굉장히 호러틱하고 소름 돋게 다가옵니다.

 

따라서 그녀가 흑조인 블랙스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밝은 세계의 억압에서 벗어나야 되므로 갈등 관계는 예견된 수순이죠. 동시에 이상적인 백조였던, 과거의 이상향 베스로부터도 해방되어야 됩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환영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은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주인공 니나의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으며, 말 그대로 실제적인 현실이 아닌 니나가 받아들이는 현실을 투영해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궁극적으로는 완벽을 위해서는 흑조를 달성해야만 하는데 단장의 말대로 그것은 자신을 해방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터널에서 그녀가 흑조인 자신을 마주했던 것처럼 그녀의 안에는 블랙스완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백조의 이상향이 베스였다면 흑조의 이상향은 누구일까요?

 

릴리

바로 릴리입니다. 동시에 주인공은 릴리를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강박은 더욱 심해지는 요인이기도 하죠. 니나가 릴리를 유리조각으로 공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자신의 환영과 강박 속의 릴리를 제거하고 해방감을 느낀 니나는 스스로에게 내재된 검은 백조를 해방하게 되고 정말로 흑조 그 자체가 되어 완벽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왜 이 영화에서 그녀는 그토록 강박과 억압, 분열에 시달렸는가? 그것은 바로 이 흑조를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요!! 한평생을 억압되어 있던 것이 해방될 때의 그 주체할 수 없는 관능의 표현은 정말로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흑조의 연기가 끝난 후 그녀는 자신의 환영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블랙스완이었던 릴리가 사실은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죠. 

 

그리고 종극에 그녀는 공연을 마무리 짓기 위해 하얀 백조로서 장렬하게 뛰어내립니다. 하얀 백조가 죽음 안에서 자유를 찾는 공연의 스토리처럼... 그녀 역시 이 공연의 완성을 위해 종극에 하얀 백조가 되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말이죠.

 

구조적으로 보면,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죽음 안에서 자유를 찾게되는 백조]는 니나가 흑조였던 릴리를 찌른 것이 사실은 자기 자신을 찌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니나가 스스로를 생의 끝으로 인도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삶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과 "죽음"을 맞이하는 백조의 삶과 일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지막에 장렬히 뛰어들기만 하면 백조의 호수 그 자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백조가 죽음 안에서 자유를 찾는다는 공연의 내용처럼 그녀 역시 자유를 찾고 나는 완벽했다고 스스로 환의에 찬 표정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블랙스완 영화는 완벽 향해 분투하는 발레리나 니나의 일대기를 다룬 예술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 자체가 곧 백조의 호수가 된 것이죠. 그녀는 끝에 행복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정말 완벽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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