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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 뜻 및 짧은 감상

아리 에스터 감독의 스릴러 영화 미드소마를 보았는데요 정말 대단한 공포 영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드소마(Midsommar)는 하지제를 뜻하는 말로 하지란 북반구에서 낮이 가장 긴 여름을 뜻하고 제는 축제를 의미합니다. 즉 여름의 낮이 가장 긴 기간에 행해지는 축제란 의미인 것이죠.

 

미드소마는 단어의 뜻 그대로 여름 하지의 스웨덴의 작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배경으로 합니다. 일반적인 공포영화는 주로 밤을 배경으로 하는데 반해 미드소마는 한 낮을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 차별화된 점입니다. 게다가 이 작은 공동체는 자신들만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이 비정상적인 신앙과 낮을 배경으로 하는 점이 부자연스러운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특이한 점은 미지의 공포가 아니라 예언된 것이 실현되는 공포라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요 오프닝부터 모든 결말을 다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들이 종교적 축제가 결합되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 정말 기이하고도 소름 돋게 오는 영화였습니다.

 

더하여 이 영화는 주인공 대니가 과거의 슬픔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가족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와 중첩되어 있는데요 따라서 한 가지 의문이 들죠. 왜 주인공 대니는 미드소마 결말에서 웃음 지었을까요?

아래 글은 이러한 영화 미드소마 결말 포함 해석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드소마 포스터: 출처 IMDB

 

미드소마 결말 포함 해석 - 주인공 대니는 왜 마지막에 미소 지었을까?

미드소마는 예언이 실현되는 것의 공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우선 오프닝을 보면 기이한 그림으로 시작하는데요 이 그림은 시작부터 결말까지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대니는 가족들을 잃고 슬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자 친구인 크리스티안이 대니를 위로하는 것을 펠레가 나무 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펠레는 두 사람과 친구들을 자신의 축제로 데려오고 대니를 제외한 이들이 공동체 의식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을, 즉 결말을 모두 알려주고 시작합니다. 결국 미드소마는 오프닝에서 보여 주었던 이 그림을 실현해 가는 영화이며 이것은 펠레의 계획임과 동시에 대니는 살아남아 스웨덴 마을의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모두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해골이 대니 가족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장면까지 담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좌) / 주인공 대니(우)

 

우선 미드소마는 주인공 대니가 가족을 모두 잃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동생은 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니에게 생의 끝을 암시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그녀는 동생에게 메일을 세 번이나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고 결국 그 불길한 예감은 실현되어 동생과 부모님 가족 모두가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에 홀로 남게 된 대니가 의지할 사람은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밖에 없지만 그는 대니를 버거워하죠. 사실 그는 더 이상 대니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티안의 친구 펠레의 제안으로 이들은 스웨덴의 호르가라는 작은 마을의 하지제 축제에 가게 되면서 진정 영화의 시작으로 돌입합니다.

 

영화 초반 대니가 가족을 상실한 이야기의 배경은 어두운 밤 눈 내리는 겨울입니다. 이는 주인공이 외로움에 절망하는 세계이고 비극적인 현실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홀로 외로움을 삼켜야만 하는 세상이죠.

 

호르가 마을

 

반면 호르가라는 공동체의 세상은 미드소마 뜻 그대로 여름이고 밝은 세상입니다. 게다가 공동체의 축제가 행해지는 장소이죠. 호르가의 세계는 큰 틀에서 보면 그녀가 겪었던 비극적인 현실과는 정반대로 신비하고 몽환적인 세계임과 동시에 그녀의 어두운 심적상태를 반전시켜 줄 축제가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호르가로 진입할 때 보면 화면이 위아래로 반전되는데 이는 다른 세상으로 진입을 암시합니다. 심지어 호르가 입구에서 차와 버섯을 먹어야 되고 이로 인해 환각을 보게 되는데 이는 현실과는 다른, 일종의 몽환의 세계로의 진입을 위한 의례 같은 것이죠.

 

결국 주인공은 호르가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사건과 의식을 통해 외로운 개인에서 공동체의 하나로 새롭게 편입됨으로써 가족의 상실로부터의 주인공 개인의 상처가 치유되는 형태로 결말지어집니다. 게다가 호르가에 진입한 날은 주인공 대니의 생일, 즉 그녀의 탄생일로 이는 그녀가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탄생할 것이라는 것 역시 암시합니다.

 

우선 호르가 공동체를 한 번 살펴보면 호르가는 작은 공동체 마을로 모두가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을입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신앙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죠. 사실상 이 마을은 모두가 예외 없이 같은 신앙 아래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신앙은 의식을 위해 사람을 제물로 삼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등 결코 정상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들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의식들은 비밀리에 혹은 내밀하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당연하다는 듯 한낮에 공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공포를 유발하죠.

 

 

주인공이 공동체에서 마주한 첫 번째 의식은 에테스투파입니다. 이는 72세가 된 노인들이 스스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는 의식이죠. 여기서 두 노인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의식을 통해 생을 마감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뛰어내릴 것을 이미 다 암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한낮에 공개적으로 그것이 실현될 때 주는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호르가는 인생을 18년 단위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고 겨울이 되는 72세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생을 끝냄으로써 이들의 이름은 다음에 태어날 아이가 계승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그들만의 신앙적 룰을 설정해 두고 생과사를 순환시킵니다. 이들은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룰과 동질성을 더욱 중요시합니다. 모두 같이 아이를 기르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앙아래서 집단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죠. 심지어 감정까지 말이죠.

 

따라서 이 두 노인의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의 의례 중 하나이며 이 의례를 거쳐 공동체는 새로운 순환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공동체가 영원불멸 이어질 것이라 믿는 것이죠. 다음에 태어날 아이가 생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잇고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얼굴로, 새로운 생명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말이죠.

 

이것이 이들의 의식에서 생의 끝과 동시에 얼굴을 지워버리는 이유입니다. 나란 존재는 이 공동체 내에서 같은 이름으로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날 예정인데 이것은 공동체 속의 순환 메커니즘에 완전히 녹아들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호르가에서 한 인간의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시스템상 공동체의 구성원의 하나로 끝을 맺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얼굴, 즉 개인을 지우는 것이죠. 우리가 한 개인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인간의 생의 끝은 얼굴을 지움으로써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의 하나로 순환의 메커니즘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죠.

 

결국 호르가 공동체에서 사적인 것은 없고 모두 집단의 일부로서만 존재합니다. 크리스티안이 호르가의 한 여인과 결합할 때 그 의식 역시 승인이 떨어져야만 하고 이 의식은 다른 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적인 것입니다.

 

 

또한 감정 역시 함께 공유합니다. 대니가 남자친구와 다른 여자의 결합을 목격하고 남자친구의 배신에 울부짖을 때 주위의 모든 이들이 주인공의 감정에 감화하여 함께 울어주죠. 그녀의 절규가 집단의 동질성으로 환원되는 순간입니다.

 

왜 주인공 대니는 미드소마의 결말에서 웃음 지었을까요?

 

겨울의 어두운 현실에서 그녀는 가족을 상실하고 홀로 외롭게 슬픔을 달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도 진심으로 그녀의 슬픔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심적으로는 항상 홀로 어둠 속에 갇힌 상태였죠.

 

 

하지만 호르가의 구성원들은 그녀의 슬픔에 공명하고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공유할 이들이 생긴 것으로 이들은 대니를 받아들였고 대니 역시 이들에 감화되어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바로 마지막에 하지제의 끝에서 모두가 절규할 때 대니 역시 이들과 함께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절규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죠.

 

그들이 대니의 감정을 이해해 주었던 것처럼 대니 역시 이들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순간, 즉 호르가의 일원이 되었음을 확인했을 때, 더 이상 그녀는 혼자가 아님을... 집단의 하나가 됨을 깨닫고 확인했기 때문에 끝에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이 과정에 중요한 것은 앞서 얼굴을 지우던 두 노인의 죽음입니다. 미드소마에서 두 노인의 죽음은 주인공 대니에게 자신의 부모님의 죽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게 됩니다. 마치 호르가에서 두 노인이 거쳤던 의례처럼 사실 그녀의 부모님은 하나의 흐름 속에 순응하면서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말이죠.

 

따라서 대니는 부모님의 죽음이 비극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전환으로 이어집니다. 심지어 그녀가 5월의 여왕이 되자 어머니는 호르가 공동체의 일원의 모습으로 그녀 앞에 스쳐 지나갑니다. 결국 미드소마에서 대니의 호르가 공동체로의 여행은 그녀가 새로운 가족을 찾고 개인적으로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되는 것으로 결말지어집니다. 마지막에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을 쳐낸 것은 더 이상 그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미드소마는 예언과 실연의 공포입니다. 앞서 말했듯 오프닝 장면의 그림대로 모든 것이 실행됩니다. 여동생과 가족이 세상을 떠날 것 같은 불안의 실현,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이 호르가로 가서 제물이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대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크리스티안과 호르가 여인의 결합, 그리고 두 노인이 생을 떠나는 의식과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광대 형벌까지 말이죠. 모든 것은 예언되었고 우리는 그것이 실현될 것을 알지만 실제로 그것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 메스꺼운 공포로 다가옵니다.

 

 

위 그림은 호르가에 도착한 날 펠레가 주인공의 생일날 선물로 준 그림입니다. 룬문자가 새겨진 호르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죠.

 

그리고 5월의 여왕을 뽑는 축제에서 대니는 실제로 펠레의 그림처럼 룬문자가 새겨진 옷을 똑같이 입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변화에 더해 이러한 사소한 디테일까지 모두 예언되고 실현되는 점이 미드소마가 놀라운 영화로 다가왔던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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