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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디 아워스를 보았습니다. 해당 영화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세 여인의 하루 동안의 일상을 조명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하루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그것은 시간을 초월해 이어져 하루는 영원으로, 가능성은 현실화되어 끝없이 짓눌리는 세월로 환원됩니다. 삶은 시간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윤회의 모습으로 나타나죠.

 

디 아워스는 구조적으로 보면 굉장히 잘 만든 영화입니다. 다만 상당히 난해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세 사람의 삶을 각각 조명하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사건이 많아 정보량이 상당합니다. 게다가 이들의 삶은 결국 이어지기 때문에 연결고리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영화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일종의 예술영화 같은 느낌으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고전 문학들의 구조적인 글을 볼 때와 같은 느낌인데요 그래서 해당 영화의 흐름에 대한 해석을 적어보았습니다.

 

아래는 디 아워스의 줄거리에 대한 해석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 아워스 줄거리 해석

우선 <디 아워스>는 세 명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들의 시간 연대는 버지니아 울프 -> 로라 브라운 -> 클라리사 본의 순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쓰는데 각 이야기는 시간축은 다르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삶 그리고 그녀가 쓴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이야기가 로라와 클라리사의 삶으로 연속되어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우선 영화의 오프닝 장면을 봅시다. 오프닝 장면은 버지니아가 스스로 강 속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죠.

 

“이 세상에 우리만큼 행복했던 두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I don't think two people could have been happier)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돌을 들고 스스로 물속으로 가라앉죠. 버지니아의 내레이션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집어 들었던 돌덩이처럼 어떤 무거운 것이 그녀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영화 전체로 보면 시작이고 삶으로 보면 끝인 장면으로, 삶 속에 죽음이 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죽음이 영화의 시작이듯 끝은 시작이고 시작은 끝이 되는 반복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디 아워스의 오프닝 장면에서 세 여인의 아침이 시작되는데 모두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이들의 표정은 무언가에 짓눌린 듯 그늘져 있음을 느낄 수 있죠.

 

흥미로운 점은 이들 세 여인이 잠에서 깨어나 일과를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 여인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누워 있었으며 그녀들을 깨우는 것은 모두 알람입니다.

 

버지니아(좌) / 클라리사(우)

 

버지니아와 클라리사는 거울 통해 자신을 마주하는데 거울을 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 혹은 현실을 인지하고 마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로라는 거울 대신 불쾌한 소음과 자신의 감각을 통해 자신이 현재 존재함을 인지하며 동시에 버지니아가 쓴 <댈러웨이 부인> 제목의 책을 집어듭니다. 이렇게 아침이, 이야기가 시작되죠.

 

글을 쓰기 시작하는 버지니아(좌) / 버지니아의 책을 읽는 로라(우)
편집자 클라리사

 

이렇게 세 사람이 일어나 본격적인 아침이 시작되고 먼저 작가인 버지니아는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독자인 로라가 읽기 시작하고 편집자인 클라리사가 편집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세 여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죠. (작가 -> 독자 -> 편집자)

 

버지니아는 자신이 쓸 책의 문장 “댈러웨이 부인은 꽃을 직접 사 와야겠다고 말했다”를 생각해 내고 독자인 로라가 이 문장을 받아 읽습니다. 그리고 클라리사가 자신의 친구 샐리에게 직접 꽃을 사 오겠다고 말하며 이 세 여인의 연결고리가 완성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단어는 꽃입니다. 오프닝의 세 여인 아침의 시작에 모두 꽃이 등장합니다. 클라리사가 꽃을 드는 장면은 로라의 남편이 이어받아 자리에 테이블에 놓고 버지니아의 하녀가 이를 정돈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이 역시 세 사람의 연결인데 중요한 것은 꽃이 상징하는 바입니다.

 

영화 디 아워스에서 꽃은 삶과 죽음 두 가지를 모두 상징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그리고 파티를 장식하기 위한 싱그러운 꽃은 삶과 그 삶을 축복을 위한 것이지만 반대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바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반부에 버지니아가 세상을 떠난 새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그 작은 새의 죽음에 노란 장미를 바친 장면처럼 말이죠.

 

리처드 집의 엘리베이터

 

주인공 버지니아는 런던에 살다가 자신의 정신적 문제로 시골에 거의 갇히다시피 살게 되었고 로라 역시 자신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의무감에 짓눌리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클라리사 또한 옛 연인이었던 리처드와 갈등을 겪고 있죠. 리처드가 사는 집의 사방이 꽉 막힌 어둠 속의 엘리베이터는 세월에 갇힌 듯한 이들의 심적 상태를 표현합니다. 

 

(참고로 클라리사의 옛 애인 리처드는 로라의 아들입니다)

 

로라: 사랑을 표현하려고 케이크를 굽는 거야.
리처드: 안 그럼 우리의 사랑을 모르니까요?
로라: 그래.

 

디 아워스에서 공통적으로 이 세 여인 모두 파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는 언니와 조카가 놀러 오기로 했고 로라는 남편의 생일파티를, 클라리사는 리처드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죠. 그리고 이 파티 준비는 진심으로 원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적 역할의 강요 혹은 의무감 같은 것입니다.

 

리처드와 클라리사

 

침묵을 덮으려고 파티를 열지.

- 클라리사에게 by 리처드

 

그래서 클라라의 친구인 리처드의 저 말이 그녀를 흔들어놓는 것입니다. 리처드의 집에서 돌아온 클라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왜 모든 게 잘못됐지?

 

리처드의 말대로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수용하고 이에 맞게 행동할 때만이 존재의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존재의 목적을 찾는 로라와 친구, 연인 그리고 어머니로서 정당성을 찾으려는 클라리사처럼 말이죠.

 

이어지는 장면에서 로라는 케이크를 망쳐지는데 결국 이는 모든 것이 망쳐질 것이라는 복선이라 볼 수 있으며 드디어 파티의 시작으로 돌입합니다. 먼저 버지니아의 집에 언니네 가족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어린 조카들이 죽은 새를 발견하고 무덤을 만들어주고 동시에 어린 조카와의 대화를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조카가 말하기를 새는 평온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버지니아는 이 새의 무덤에 노란 장미꽃을 바친 후 새와 마주 보도록 나란히 누워 새의 눈을 마주하는데 이는 마치 평온한 안식(rest in peace)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로라가 누워 버지니아를 바라보는 듯한 장면으로 바뀝니다. 마치 로라가 새가 된 것처럼 말이죠. 이 장면에서 로라는 어린 새가 된 듯한 이미지에 더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버지니아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관객인 우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는 작가입니다. 로라는 독자이죠. 그래서 두 사람은 시공간을 초월해 마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라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인 <댈러웨이 부인>의 작가인 버지니아에게 답을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겁게 짓눌리는 자신의 삶에서 새의 죽음을 보고 죽음만이 평온한 안식인가 하는 질문을 버지니아에게 던지는 것으로 참으로 놀라운 연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로라는 책을 더 읽은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죠. 그리고 버지니아의 삶으로부터 다음 답을 기다립니다.

 

장면은 바뀌어서 클라리사로 돌아가는데 클라리사는 분주하게 파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리처드의 전 애인인 루이스가 방문합니다. 그리고 경쟁자였던 루이스를 만나고 나서 클라리사는 무너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달걀을 깨는 소리입니다. 영화 초반부에 버지니아가 주방으로 갔을 때 한 하녀가 달걀을 깨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주 강조되는 장면으로 영화 내에서 텍스트적으로 보았을 때 달걀은 버지니아 존재 그 자체예요. 버지니아가 한 하녀에게 지시할 때 침묵이 발생하는데 그 침묵은 다른 하녀가 달걀을 깨는 소리로 인해 깨어집니다. 이 달걀이 깨지는 소리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부서지는 소리입니다.

 

무너지는 클라리사(좌) / 루이스(우)

 

그런데 루이스가 왔을 때 클라리사 역시 달걀을 깨는 소리와 함께 존재가 무너지며 흐느끼죠. 그녀는 루이스에게 우리는 그때의 감정들을 영원히 잃어버렸고 리처드가 자신을 댈러웨이 부인이라 부른 순간부터 그녀 또한 세월의 저주에 갇혀버렸다고 고백합니다. 클라리아는 그 시절, 그 순간의 기억을 등불처럼 간직하며 인생을 영원한 지옥처럼 반복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댈러웨이 부인이 되어서 끝없는 파티를 열며 살아왔던 것이죠.

 

이를 듣고 루이스가 그녀에게 말하길, 리처드와 헤어지고 그를 떠났던 날 여러 해만에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떠나감으로써 세월의 저주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니... 한마디로 새로운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복선으로 로라 역시 결국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날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후 리처드는 파티가 시작되기 전 클라리아의 눈앞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만큼 행복했던 두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I don't think two people could have been happier)

 

이 말은 버지니아가 스스로 강으로 가라앉으면서 한 말과 일치합니다. 리처드가 뛰어내리기 전에 버지니아의 삶을 회피하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죠. 그의 죽음은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동반되는데 그 소리는 과거 엄마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리처드는 로라의 아들로 로라는 루이스처럼 가족을... 리처드를 남겨두고 떠나갔던 것입니다.

 

리처드

 

버지니아의 말처럼 리처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남아있는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순간의 영원함인 디 아워스, 즉 세월을 연결고리를 매듭짓고 클라리사에게 새로운 시간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리처드는 어머니가 자신을 떠나가며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것을 이미 본 인물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리처드의 장례식이 열리고 엄마인 로라가 클라리사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말하죠. 죽음 속에서 자신은 삶을 택했다고. 그리하여 디 아워스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오프닝 장면으로 되돌아가며 버지니아에서 로라 그리고 클라리사로 윤회처럼 이어지던 세월의 모습을 완성시킵니다.

 

버지니아의 죽음에서 시작되어 로라의 삶으로 그리고 리처드의 죽음을 통해 클라리아의 삶으로 그리고 영화의 종극에는 버지니아의 죽음으로 말이죠. 시작은 끝이며 끝은 시작이 되는데요 그렇다면 이 영화의 끝은 또다시 새로운 삶으로 환원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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