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개요 및 간단 감상]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의 소설에 실린 첫 번째 단편의 제목입니다.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드라이브 마이 카 원작이 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먼저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간단한 감상을 먼저 말하자면 어떤 면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어 보이는 소설이지만, 상당히 구조적으로 쓰인 소설이며, 하루키 답게 상실의 내재와 타자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상실이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 이것을 이 소설, 더 나아가서는 하루키 소설의 명제라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소중한 것을 잃는 경험을 하고 어떤 때에는 잃어버린 그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들처럼 차 안에서의 나누는 작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삶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완전한 이해의 불가능성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소소한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음을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설을 바라보는 해석적 관점입니다. 읽으면서 정말 하루키 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는 소설에 대한 줄거리와 해석에 대한 내용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줄거리]

드라이브 마이 카 줄거리는 연극배우인 가후쿠는 어느 날 차 사고와 시력 문제 때문에 스스로 차를 운전할 수 없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급하게 대신 운전해줄 사람을 찾게 되고, 수리공의 소개로 미사키라는 여자를 전속 운전기사로 고용합니다.

 

스케줄에 따라 미사키는 가후쿠를 극장으로 데려다줍니다. 일터로 가는 중 가후쿠는 그녀의 옆, 조수석에 앉아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대사 연습을 합니다. 미사키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게 된 이후 가후쿠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과거 사별한 아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의 아내는 좋은 사람이며 동시에 아름다운 배우였으며 가후쿠는 아내와 사별하기 전까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와 항상 만남을 가져왔습니다. 그게 모르게 말이죠. 가후쿠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해왔습니다. 동시에 아내가 왜 그러한 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이제는 더 이상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수가 적은 미사키는 어느 날 드물게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왜 친구를 만들지 않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죠. 이 질문을 통해 서로에 대한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아내와 언제 만나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 등등. 미사키 역시 어머니와 사별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진즉에 사라지고 홀로 살아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상실과 동시에 그녀가 부모에게 받을 상처 또한 털어놓게 되죠.

 

(참고로 소설에서는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고 앞으로 서로가 마음을 열 거라는 점을 정체된 도로에서 나가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후쿠는 그녀의 아내의 일에 대해 털어놓게 됩니다. 그녀의 아내가 연기 때마다 상대 배역의 남자들을 만나왔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그녀가 왜 그러한 일을 했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친구에 관해 다카쓰키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카쓰키는 그의 아내와 만남을 가졌었던 마지막 배우였죠. 가후쿠는 그에게 두 사람의 만남의 비밀을 모르는 척 접근해 아내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주인공은 왜 아내가 그 남자와 만났는지를 이해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복수할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카쓰키는 그와 친구가 되었지만 왜 아내가 그와 만났었는지를 끝까지 알 수 없었고 동시에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미사키는 다음 같이 말합니다.

 

그건 병 같은 거예요, 가후쿠 씨.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죠. (중략)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 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

- 미사키-

 

미사키의 말을 들은 주인공은 소소한 마음의 평온을 얻고 차에서 잠이 듭니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와 상실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으로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은 말합니다.

 

[해석]

시야 결손에 관하여

드라이브 마이 카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시야 결손입니다. 주인공이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던 이유, 즉 운전기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그의 오른쪽 눈에 시야 결손이 있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결손 된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되고 그것은 아내의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은유입니다. 결국 결손은 타자에 대한 근본적으로 이해 불가능함이 내재함을 나타내고 이에 대해 무력감과 상실감을 지닌 주인공이 스스로의 운전대를 미사키에게 맡김으로써 소통을 통해 일종의 위안을 얻는 것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자동차와 두 사람에 관하여

가후쿠에게 있어 그의 차는 생전 아내가 골랐던 자동차이며 동시에 그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녔던 자동차입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운전을 못하게 되고 미사키가 대신 운전대를 잡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조수석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그는 뒷좌석에 앉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수석, 즉 그가 운전대를 잡았을 때 아내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조수석은 아내의 생전 그녀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고 주인공이 조수석에 앉게 되면서 사별한 아내에 대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구조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자동차는 조수석의 가후쿠와 운전하는 미사키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동시에 가후쿠와 조수석의 아내와의 이야기 역시 시사하는 동시에 중첩적인 구조를 가집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가후쿠와 미사키가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동차는 가후쿠에게 있어 개인적인 공간이었고, 그동안 어떤 여자의 탑승도 허락하지 않았었습니다. 이것은 소설 가장 첫 부분에서 여자 운전자에게 느끼는 그런 반감과도 같은 것인데 이는 가후쿠가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 마음을 끌리지 않도록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이며 다른 의미로는 이해 불가능성에 대한 집착이기도 합니다.

 

미사키는 이런 관점에서 예외적인 경우에 들어갑니다. 그녀는 운전을 잘하며 동시에 여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속 기사로 채용한 것입니다. 게다가 주인공과 아내 사이에 딱 사흘을 살다 간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계속 살았다면 딱 미사키 나이가 됩니다.

 

미사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사키는 어머니와 사별했지만 아버지는 진즉에 그녀를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아버지의 부재에 의한 상실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가후쿠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 하며 두 사람의 상실된 부분을 연결시키는 구조가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것을 상실하고 서로의 존재는 각자의 상실된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통하는 것이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주인공의 차 안의 공간, 그가 운전대를 잡는 것은 상실한 아내에 대한 집착 혹은 절망과 체념에 대한 대상적 자동성을 나타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제목 그대로 미사키에게 내 차를 운전하게 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상실감을 드러나도 소통을 통해 일종의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것을 연기라는 모티브를 사용해서 이를 나타내면서 말이죠. 우리는 누구나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일은 어찌 보면 삶에서 당연한 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슬픔을 내재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과의 소통은 하나의 치유가 될 수 있음을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