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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최근 가더 가츠테루-우루샤 감독의 더 플랫폼이라는 보았는데요 정말 섬뜩하고 흥미진진한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수직으로 된 플랫폼의 구조와 그에 따른 인간들의 행동 양식, 그 잔혹함과 이기심은 정말 리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는데요 다만 이 영화의 결말은 사람들을 조금 혼란스럽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많은 부분을 관객들의 해석에 맡겨놓았다고 볼 수 있겠는데 아래 글은 더 플랫폼을 보고 남기는 개인적인 해석과 후기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석 및 감상후기

더 플랫폼은 요리사들이 정성스럽게 요리를 준비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궁금증을 자아내죠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요리를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 고렝이 눈을 뜨면서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작 부분에서 플랫폼에서 눈을 뜬 주인공의 의문과 행동양식은 곧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투영합니다. 처음 보는 장소에서 눈을 떴고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노인이 앉아 있고 대뜸 48층이라는 말을 하죠.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당혹감과 이 플랫폼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은 관객과 하나 되어 몰입감 있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고렝이 있는 곳은 수직 자기 관리 센터라 불리는 실험실, 혹은 감옥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구덩이라 불리는 이곳은 가장 높은 곳인 1층부터 끝을 알 수 없는 아래층까지 수직으로 이어진 구조인 것이죠. 그리고 사각형의 뚫린 부분으로부터 플랫폼에 음식이 차려져 내려옵니다.

1층부터 음식이 내려오며 아래층의 사람들은 위층에서 먹고 남긴 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낮은 층에 있으면 남은 것이 거의 없어 먹을 것이 없습니다. 각 층의 배정은 한 달에 한 번 무작위로 바뀝니다. 운이 좋으면 높은 층에서 호화로운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운이 정말 나쁘다면 낮은 층에서 한 달을 굶을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것이 무작위라는 점, 그리고 플랫폼이 해당 층에 머무르는 시간에 정해져 있다는 점이 더 플랫폼의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주인공 고렝

우선 주인공 고렝에 대해 살펴보자면 그는 지식인이며 이상주의적인 사람에 가깝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를 지어 이 시스템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는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그는 플랫폼에 들어올 때 한 가지 물건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다는 말에 책을 가지고 들어온 인물이에요. 그 책의 이름은 돈키호테죠. 그가 이 수직 자기 관리 센터라 불리는 곳에 들어온 이유도 학위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즉 지식인이면서 이상적인 사람, 문(文)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죠.

트리마가시

반면 그와 같은 층을 쓰는 트리마가시란 노인은 고렝과는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이 노인은 주인공과는 달리, 다른 사람을 해친 죄로 이 플랫폼에 들어오게 되었죠. 게다가 이 노인이 플랫폼에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온 물건은 칼입니다. 힘 그리고 무를 상징하는 이것은 고랭이 가져온 책과 대비되며, 철저하게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때로는 매우 잔혹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런 두 사람의 극명한 차이는 대화와 행동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노인은 위층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살기 위해 허겁지겁 먹는 반면 주인공 고렝은 생각이 없다면서 먹지 않습니다. 또한 주인공은 위층 사람들이 음식을 다 먹어버려 아래층 사람들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을 보고 위층에 음식을 배분하자고 설득하여 상황을 개선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노인은 "자네 공산주의자야?" 라며 반문합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 두 사람은 다시 새로운 층으로 배정받게 되는데 절망적이게도 171층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렇게 낮은 층까지는 절대 플랫폼에 먹을 것이 남아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고렝을 묶어둔 후 자신의 식량으로 삼으려 하죠. 밑바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 더 플랫폼을 타고 내려온 미히루란 여자 덕분에 그는 풀려날 수 있었고, 주인공은 풀려나자마자 분노하여 노인을 해치죠. 게다가 그는 노인이 자신에게 하려 했던 것처럼 노인을 식량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낮은 층의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이모구리

다음으로 그가 33층에서 눈을 뜨자 만난 사람은 전 수직 자기 관리 센터의 직원이었던 이모구리란 여자입니다. 그녀 역시 흥미로운 인물로 과거 고렝과 같은 이상주의적인 면이 부각됩니다. 또한 자발적으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점 역시 같죠.

그녀가 말하길 필요한 만큼씩 먹으면 최하층까지도 음식이 갈 수 있으며 이곳 사람들에게 자발적인 연대 의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믿는 인물입니다.

이모구리가 수직 자기 관리 센터에 들어올 때 가지고 온 것은 그녀의 반려견 람세스 2세입니다. 즉 그녀가 더 플랫폼에 데려온 반려견은 연대의 상징임과 동시에 메시지인 것으로 얼마나 이상주의적인 인물인지 잘 드러나죠. 하지만 그녀의 이상은 반려견 람세스가 미히루에 의해 세상을 떠나면서 좌절되었고 200층에서 깨어나자 절망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바하랏

마지막으로 6층에서 만난 인물은 바하랏으로 고렝은 그와 합심하여 이 불합리한 플랫폼의 구조를 바꾸어보려 합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즉 무력을 사용하여 모두에게 공평하게 먹을 것을 분배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상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그를 따르는 산초 판자와 같죠.

결국 더 플랫폼이라는 영화는 이 지옥 같은 수직 자기 관리 센터에서 각 층별로 존재하는 고유한 이기심, 이 시스템의 부조리를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플랫폼에 차려져 있는 음식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그러하듯 자원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직 플랫폼의 구조는 어떤 측면에서는 자본주의를 은유한다고 볼 수 있죠. 위층의 소수는 자신의 이기심만큼 먹고 싶은 만큼 충분히 먹을 수 있지만 아래층으로 갈수록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인공과 이모구리는 이상주의적인 인물로 나름 이 구조를 평화로운 방법으로 바꾸어보려고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고렝은 바하랏과 함께 힘을 사용해 강제적으로 최하층까지 음식이 내려갈 수 있도록 아주 조금씩만 사람들에게 분배해주려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사람들을 해치기도 하는 등 너무 좋지 않은 결과들을 초래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 방법은요 낮은 층에 있으면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위로는 갈 수도 없고 강제할 수단도 없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이 영화는 사람의 욕망에 기초하는 자본주의와 모든 것이 균등하게 배분되는 공산주의 등의 사회적 문제를 모두 지적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더 세밀하게 따지자면 더 플랫폼은 사회비판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자기비판 영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와 이들의 군상들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수직 자기 관리 센터라 불리는 곳의 끝은 333층입니다. 물론 플랫폼은 더 아래까지 하강하는 장면이 나오죠. 하지만 마지막에 판나코타, 즉 음식을 가지고 있어도 더워지거나 추워지지 않는 것에 유추해 보면 사람이 있는 끝은 333층이라 볼 수 있으며 각 층마다 두 명씩 있으니 총 666으로 지옥에 대한 은유라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지옥의 끝에서 한 소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판나코타가 아닌, 이 소녀를 메시지로서 플랫폼의 꼭대기까지 올려 보내는 것으로 영화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 결말이 참 해석의 여지가 많은데요 이는 감독의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돈키호테

고렝이 가져온 책은 돈키호테인데 이 책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자신의 이상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광적으로 나아갔지만 결국 마지막에 제정신을 차리고 쓸쓸히 눈을 감아버리는 새드엔딩입니다. 마찬가지로 광적으로 이상을 밀어붙이던 고렝의 마지막도 자신의 퇴장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모구리와 트리마가시가 환영으로 등장하는 것 역시 돈키호테의 현실과 환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오가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또한 키호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라는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결국 극단적으로 이상과 현실 어느 하나만을 달려가던 이모구리와 트리마가시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더 플랫폼 결말에서 최하층에 어린아이가 있었죠. 그녀는 가장 낮은 층에서도 살아있었어요. 왜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녀의 존재가 있기에 바로 이 수직 자기 관리 센터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저 깊은 바닥에서도 그 어린 소녀를 돌보아왔던 존재들이 있었고 고렝이 메시지의 상징으로 아껴두었던 판나코타를 그녀에게 주었듯, 다른 누군가 역시 어린 소녀가 생존할 수 있도록 밑바닥에서도 노력해 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어린 소녀야 말로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는 사회적 자기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을 말이죠. 어쩌면 이 시스템은 누군가가 그 어린 소녀를 최상층까지 올려주기를 기다렸던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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