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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및 단상]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영화 그린 나이트를 보았는데요 감상 후 정말 감탄했습니다. 해당 영화는 아서왕의 신화에 등장하는 가웨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웅적인 서사보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운명을 마주하는 필멸자로서의 그를 조명한 이야기라는 것이 굉장히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판타지적이고 마술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굉장히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닌 역작이라 느껴졌습니다.

 

해당 이야기는 영웅 같지 않은 영웅 가웨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종극에는 그가 마주하는 운명을 선택함으로써 그는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영웅이 되며 영원불멸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이야기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그린 나이트는 정말 뛰어난 영화라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이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는 그린 나이트에 대한 줄거리에 대한 해석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린 나이트 포스터 출처: IMDB

[줄거리]

그린 나이트의 오프닝은 가웨인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시작됩니다. 아주 충격적인 시작으로 다가오죠. 동시에 크리스마스 날 그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진정으로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 가웨인

 

잠에서 깬 그는 에셀에게 어디에 가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오늘이 크리스마스니 교회에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한 사람이 가웨인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아직 기사가 아니에요?

 

그리고 가웨인은 기사가 아니라고 답하자 그 사람은 서두르셔야지라며 충고하는데 가웨인은 이에 급할 필요가 없다고 답합니다.

 

또 에셀이 교회에 갈 거라고 일어나라고 말하니 주인공은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 답합니다.

 

그리고 연회에서 아서 왕이 주인공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에게 너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때 가웨인은 드릴 이야기가 없다고 하죠. 그러자 여왕이 그에게 주위를 둘러보라 하며 무엇이 보이냐 묻습니다. 그러자 가웨인은 전설들이 보인다고 답하자 여왕은 저들 사이에 한가롭게 앉아있지 말라고 충고하죠.

 

 

그리고 연회 중에 그린 나이트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에게 자신과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죠. 자신을 쓰러뜨리면 부와 명예를 얻지만 자신가 맞서 싸우는 자는 내년 크리스마스 무렵 녹색 교회에서 자신의 목을 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웨인은 이 제안에 응하고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벱니다. 그린 나이트는 목이 잘린 채로 웃으며 성을 떠나고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칭송받지만 동시에 운명을 지게 되죠. 바로 1년 후 자신의 목이 잘린다는 운명 말이죠.

 

주인공은 그린 나이트를 쓰러뜨리고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하는 짓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량과 다름없이 지냅니다. 그리고 그린 나이트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죽음의 공포가 그를 조여오기 시작하죠.

 

그린 나이트를 부른 것은 어머니의 마법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는 죽음이라는 필멸의 존재가 당연히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을 바로 코앞에 두게 됩니다. 그를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가 만든 녹색 허리띠를 차고 가웨인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납니다.

 

물론 그는 영화 초반에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듯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녹색 교회로 떠나는 그는 여전히 위대한 영웅 혹은 기사와는 거리가 먼 상태입니다. 여전히 한량이며 속물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길을 가르쳐 준 이에게 도움의 대가로 고작 동전 하나를 던져준 것으로 퉁치려 하자 도적을 불러들여 위기에 처하게 되고 머리를 찾아달라는 여인의 부탁에 그럼 그 대가로 무엇을 줄 거냐고 되묻다가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녹색 교회의 근처에 있는 성에서 성주가 자신이 숲에서 무엇을 얻건 가웨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겠으니 그 답례로 주인공에게 성에서 얻은 것을 달라는 약속조차 어깁니다. 동시에 성주 부인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추악함을 보이죠.

 

우여곡절 끝에 그린 나이트 앞에 선 가웨인은 자신의 목을 내어주어야만 하는 운명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역시나 그는 망설이죠.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에게 당신처럼 목을 내어줄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에 그린 나이트는 그 일 년 동안 용기를 배웠어야지라 말합니다. 그러자 가웨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죠.

 

일 년이든 백 년이든 아무 차이가 없어요. 시간을 좀 줘요.

 

결국 그린 나이트 앞에 선 주인공은 여전히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데 이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환상 속에서 도망친 자신의 인생의 끝을 보게 됩니다. 죽음에서 도망치는 세속적인 그의 결정에 의해 후에 그가 욕망으로 쌓아 올릴 비극적인 인생을 환상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죠.

 

 

그 환상 속에서 가웨인은 드디어 삶과 죽음의 연관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던 허리띠를 풀고 드디어 죽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자 그린 나이트는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칭찬하며 이제 머리를 갖고 돌아가라 말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게 됩니다.

 

[해석]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의 죽음을 향한 여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왜 그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맞이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필멸자로서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위대한 문학에서 혹은 영웅적 서사에서 나오는 핵심의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고민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삶에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삶의 편에 서 있습니다. 그럼 죽음을 향해 걸어가겠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삶에 서서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의 편에 서 있을 수 있다면요?

 

그럼 삶을 등에 지고 죽음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삶 -> 죽음),

 

죽음의 편에 서서 그것을 등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아갈 삶입니다. (죽음 -> 삶)

 

그렇게 진정한 삶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때문에 가웨인을 포함한 여러 신화의 영웅들은 자신의 대부분이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죽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앞을 내다본다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아갈 진정한 생이 되는 것이죠.

 

결국 그들은 죽음을 인식하고 함께하며 그것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눈앞에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던 것입니다.

 

영화 초반부에 가웨인은 죽음이라는 인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린 나이트 앞에 서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 순간까지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는 이런 그를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형태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인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도 표현됩니다.

 

앞서 줄거리 첫 부분에 어떤 이가 가웨인에게 기사가 아니에요란 질문에 그가 급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는 장면과 에셀의 질문에도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란 문답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린 나이트 앞에 섰을 때 그는 일 년이든 백 년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하죠.

 

이유는 그가 죽음을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한 고민도 없이 한량처럼 지내고 흘러가는 시간은 그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일 년이든 백 년이든 똑같은 것입니다. 삶을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으로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생을 살고 있지 못하는 것이죠.

 

그린 나이트에서 가웨인이 도적을 만나 묶인 채로 남겨졌을 때 카메라는 가웨인을 비추고 시계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백골이 된 가웨인이 등장하죠.

 

그런데 그 백골이 된 가웨인을 조명하면서 카메라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자 다시 살아 있는 가웨인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는 삶과 죽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지금 가웨인의 자리에서 시간의 방향으로 카메라가 돌면 백골이 된 가웨인을 나타내는 것으로 삶 -> 죽음의 방향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백골의 가웨인 즉 죽음에서 반대로 카메라가 돌면 살아 있는 가웨인이 보이는 것으로, 죽음에서 바라보면 삶이 보이는 것을 참으로 절묘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백골(죽음)- > 삶)

 

결국 그에게 시간은 많다는 말, 그리고 일 년이든 백 년이든 똑같은 것은 그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인식 역시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왕이 그에게 저들 사이에 한가롭게 앉아있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으로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밖에 없으며 그 순간은 바로 지금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린 나이트는 결국 가웨인 자기 자신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가웨인은 환상을 본 이후 스스로 벨트를 풀고 바로 지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바로 지금 선택한 것입니다.

 

신의를 가지고 그린 나이트와의 약속을 지키고 동시에 운명에 맞서는 용기를 증명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으로, 기사로 그리고 영웅으로 거듭나 영원불멸의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린 나이트가 그를 칭찬했던 것이고 목을 가지고 돌아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끝을 맺겠지만 주인공이 스스로 지킨 신의와 약속 그리고 기사도 정신은 영원불멸토록 회자될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크리스마스였습니다. 12월 25일은 겨울이죠. 12월은 한 해의 끝이며 겨울은 모든 것의 죽음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죽음의 계절에 새로운 삶이 탄생하듯, 그리고 죽음 속에서 삶을 상징하는 존재가 있었듯 그렇게 가웨인은 부활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결국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이 진실한 삶을 깨닫고 영웅으로 그리고 진정으로 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서사를 보여주는 멋진 영화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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