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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및 간단 감상]

올리비아 뉴먼 감독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보았습니다. 습지에 사는 카야라는 소녀의 삶을 조명하는 해당 영화의 자연 풍경은 경이롭고도 아름다워서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늪지 소녀에서 한 인간으로서 눈을 감는 장면은 너무나도 인상적이라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 볼만한 점이라면 아마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 카야는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요 그래서 간략한 줄거리와 함께 결말에 대해 조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아래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내용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카야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체이스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잘생기고 인기 많은 청년이었죠. 그가 생을 마감한 이유는 감시탑에서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수사관들은 체이스의 죽음을 조사하던 중 그것은 사고가 아닌 누군가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었고, 그의 연인이었던 카야라는 습지에 사는 소녀를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그리하여 붙잡힌 카야는 체이스를 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재판 과정을 통해 습지 소녀라 불리는,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자연(습지)에 살고 있는 카야라는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입니다.

 

과거 카야에게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해 처음으로 어머니가 떠나고 그리고 형제자매, 마지막으로 아버지도 떠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습지에 외로이 홀로 남아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갑니다.

 

자연에서 배우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by 카야-

학교에 한 번 간 적이 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멸시했기 때문에 곧바로 도망쳤고 이후 두 번 다시 사회에 발붙이지 않았습니다. 카야는 자연을 좋아하여 자연의 동물과 식물들을 보고 관찰하며 그림으로 그리며 기록으로도 남겨두기도 하는 등 사회가 아닌, 자연에서 배웁니다.

 

사람들은 이런 주인공을 습지 소녀라 부르며 마녀를 보듯 대하죠.

 

테이트

이런 그녀에게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납니다. 한 명은 테이트라는 인물로 어릴 적 카야와 만난 적이 있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인물이죠. 테이트는 카야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정말로 마음이 잘 맞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테이트는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카야를 떠났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지만 약속한 날에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카야는 큰 배신감을 느끼고 테이트와 헤어지게 됩니다.

 

체이스

두 번째로 카야에게 나타난 남자는 바로 체이스입니다. 그는 카야에게 사랑을 속삭입니다. 하지만 체이스는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약혼자가 있으면서 그녀와 결혼하자고 거짓말을 했고 모든 것이 들통나자 폭력성을 드러내 그녀를 위협하였으며, 심지어 주인공의 보금자리인 습지의 집을 침범하여 헤집어놓습니다. 이에 카야는 커다란 생의 위협을 느끼죠. 그리고 영화 시작 부분에서 보듯 그는 추락하여 생을 마감한 채 발견됩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결말]

결말에 이르러 카야는 무죄를 받고 풀려납니다. 그녀가 체이스를 해쳤다는 그 어떠한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죠. 의심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풀려난 카야는 사랑하는 테이트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습지에서 평생을 자연의 동물과 식물들을 관찰하며 행복한 여생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녀가 나이가 들어 생을 마감했을 때 남편인 테이트는 그녀의 유품인 일기장에서 한 가지 진실을 알게 됩니다. 과거 체이스를 해친 사람이 바로 카야라는 것이죠.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가 테이트를 해쳤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고 사후 그녀의 일기장에 적힌 비유적 표현과 체이스의 조개 목걸이를 통해 암시하고 있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흔적을 지운 것에 대해

우선 체이스는 화재 감시탑 바닥의 철창이 뚫린 곳에서 추락하여 생을 마감했습니다. 화재 감시탑은 체이스가 주인공 카야에게 알려준 장소로 두 사람은 함께 이곳에 온 적이 있죠.

 그리고 그때 체이스는 바닥의 철창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원래대로 되돌립니다. 카야 역시 이 장면을 보고 있었죠. 즉 그녀는 화재 감시탑 바닥의 철창이 뚫린 부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모든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주인공이 사람을 발견할 경우 숨는 장면입니다. 왜 그녀는 사람들을 보면 숨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 혹은 사회라는 것은 습지에서 홀로 사는 주인공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처자가 혼자 그렇게 사는 거 비도덕적이지 않나?
-by 사회복지과 직원-

 

일례로 사회복지과 직원은 카야를 사회의 잣대를 들이밀어 그녀를 공동 주거지로 보내버리려 합니다. 즉 그녀를 자신의 보금자리인 습지에서 살 수 없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하여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사람을 피해 다닙니다.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장면

사회복지과 사람이 습지에 있는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카야가 테이트를 데리고 도망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도망치는 와중에 자신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지우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흔적을 지우는 것은 주인공에게는 당연한 일상과도 같습니다.

 

게다가 흔적이 없다는 것에 대해 지적할 때 카야의 발자국이 습지에 의해 지워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점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죠.

 

내레이션에서 주인공이 “습지는 죽음을 통달하고 있다”라 말하듯, 그녀는 테이트를 유인해서 추락시키고 모든 흔적을 지울 능력이 있음을 영화의 흐름을 통해 암시하고 있죠.

 

체이스가 추락한 날 카야는 마을에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책을 출판해주는 편집장을 만나러 다른 마을로 갔고 실제로 그곳에서 편집장을 만났죠.

 

하지만 진실은 다른 마을에서 편집장을 만난 후, 새벽에 변장하여 버스를 타고 되돌아와 테이트를 감시탑으로 유인해서 해친 후 흔적을 지우고 다시 편집장을 만났던 마을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새벽이었기 때문에 테이트는 바닥이 뚫려 있는 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죠.

 

2. 왜 카야는 체이스를 제거해야만 했는가?

혼자 사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두려움에 떨며 사는 건 차원이 다르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홀로 습지에서 자랐습니다. 이는 곧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홀로 사는 그녀에게는 인간의 규범이나 도덕관보다는 생존을 위한, 자연의 약육강식의 법칙이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죠.

 

과거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 모두가 그녀를 떠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강대한 힘을 가진 포식자에 해당하는 체이스의 위협에 그녀는 과거처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으며, 과거 가족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본인이 더 이상 습지의 집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주인공은 사회에 도움을 청할 수가 없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싫어했고 사람들은 그녀를 이름이 아닌, 습지 소녀 혹은 마녀와 같다고 일축합니다. 결국 그녀는 세상에서 유리된 이방인 혹은 사각지대에 있는 주변인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죠.

 

그래서 영화에서 보면 "사람들은 껍데기 안에 생명이 살고 있다는 걸 잊죠"라 말합니다.

 

누구도 주인공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회는 그녀를 사회적 관습 혹은 도덕이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늪지에서 살지 못하게 하려 하죠. 사회의 모든 제도는 외부인 격인 주인공을 체이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줄 수도 그럴 의지도 없습니다. 결국 카야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고 습지에 살며 자연의 법칙을 익힌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포식자에 해당하는 체이스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주인공의 유품인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습지는 죽음을 통달하고 있다. 비극이라 규정짓지도 않는다. 죄는 더더욱 아니다. 모든 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그러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가끔 먹잇감이 살아남으려면 포식자는 죽어야 한다.

- 주인공의 내레이션-

 

편집장과의 대화 역시 재미있는데요 체이스를 제거하기 전날 편집장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카야: 반딧불이의 불빛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짝을 짓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수컷을 유혹해 먹이로 삼기 위해서죠.

편집장: 비도덕적이네요.

카야: 자연에 선과 악이 있는진 모르겠어요.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이죠. 환경이 환경이니 만큼요.

 

카야가 체이스를 유혹해 제거하는 것에 대한 암시이며,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배운 주인공의 이 같은 행동은 사회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그녀는 습지의 집을 인정받고 유일한 위협이던 체이스를 제거함으로써 눈을 감을 때까지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환영으로 카야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다시 돌아오죠. 왜 그녀는 평생을 습지의 집에서 살았는가? 바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재가 노래하는 곳 결말에서 주인공은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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