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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셀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

 

집에서 뒹굴거리며 넷플릭스에서 공각기동대 SAC를 보고 있는데, 공각기동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웃는 남자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깁니다.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인간이 되려고 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가?

- 공각기동대 SAC-

 

저 구절이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유래했으며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가」라는 웃는 남자의 의문이 붙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솔직히 저는 딱 저 구절만 보고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 구절 만으로 어떤 책인지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내용은 상상한 것과는 상당히 많이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정말 인상 깊은 소설이었습니다. 여러 비유나 은유 같은 장면이 많아 읽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정말 읽기 잘 한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세계문학들은 정말 묘하게 사람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꿈꾸는 홀든

우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홀든은 겁이 많고 외로움을 잘 느끼며 예민한 감성을 가진 고등학생 소년입니다. 홀든은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문화, 기성들의 세계를 정말 싫어하는 학생입니다. 그들은 모두 가식적이라 생각합니다. 홀든이 보기에 그들의 세계는 순수성, 이상이 없으며, 그것을 지키고 유지해 나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남는 것은 겉치레뿐이며, 가식과 이해타산적인 모습뿐입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만약에 윗물이 맑지 않다면 아랫물 역시 맑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의 위쪽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영향을 미치는데 그들의 기반이 맑고 투명하고 정당성 있게 생각되지 않으면 결국 모든 물이 오염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홀든은 그리하여 이 윗물과 맑은 아랫물을 단절시키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홀든이 그렇게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기성의 교육과 제도에 물들어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기 위한 저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앨리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수한 영혼의 상실은 어린 홀든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홀든의 방황기입니다. 홀든은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학교를 나와 뉴욕 거리를 방황합니다. 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건가? 당연히 성적이 안 좋은 이유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해야 하고 그것은 곧바로 어른들의 세계로의 편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홀든은 고등학교를 나와 어른들의 세계의 편입을 거부하고 어두운 세계를 체험하러 갑니다. 학교라는 곳은 엄연히 말하면 폐쇄성이 있는 장소이며 권위의 세계이기에 그가 진실로 어른들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홀든은  뉴욕을 방황하면서 어두운 세계, 혹은 기성들의 세계를 체험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대화하려고 합니다. 택시기사부터 시작하여 밤거리의 가장 어두운 부분에 일하는 사람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든 그 안에서 소통하고 엉터리 같고 가식적이어도 나름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홀든은 이 방황에서 기성세대의 그 누구와도 관계 다운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데 홀든은 그 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홀든은 항상 외롭습니다.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꺼져 내려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말아 줘. 앨리. 날 사라지게 만들지 마. 앨리. 제발, 부탁이야. 사라지고 싶지 않아.

 

또한 이 어른들의 세계에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자신 역시 타락해가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 역시 저 기성세대에 편입되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에 영원한 순수성의 상징 같은 앨리에게 기도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그곳에서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 하고도 쓸데없고, 바보 같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니깐 말이다.

 

그래서 홀든은 떠나려 합니다. 저 멀리 서부로, 이상적인 곳으로 도피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벙어리 행세를 하며 외부와 단절되려고 합니다.

 

어디서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는 절대로 찾을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런 곳은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일단 가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어떤 자식이 바로 코밑에다 ???(좋지 않은 말)이라고 써놓고는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리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홀든은 박물관에서 말합니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라고, 우리는 늘 변해간다고. 또한 세상의 모든 욕을 다 지울 수도 없으므로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런 좌절감에 그는 박물관에서 설사를 하고 쓰러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쓰러지고 난 다음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대목입니다.

 

피비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하고 있었는데, 목마에서 떨어질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황금의 링을 잡으려고 할 때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떨어져도 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깐.

 

그리하여 홀든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와 기성세대의 현실을 종합해나갑니다. 마지막에서 그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그립다고 말하면서.

 

이 이야기는 소설에 첫 부분에 나오듯이 홀든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원에서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 무릇 그렇듯이 12월은 한 해의 끝이며 계절적으로는 겨울입니다. 겨울은 모든 것의 끝 혹은 죽음의 계절입니다. 이는 과거 이상만을 추구하던 홀든과의 작별(죽음)을 고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크리스마스는 성탄절로 새로운 탄생의 날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홀든과 작별을 고하고 요양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새롭게 탄생하는 홀든은 과거의 이상만을 바라는 홀든이 아닌, 이상을 간직하고 현실을 인정해 나가는 새로운 홀든으로 탄생하는 중입니다.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말이죠.

 

[방황의 이정표]

사실 이 소설은 청소년인 홀든의 방황이지만 넓게 보자면 이상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방황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처절하고도 애타는 감정이 드는 것은 홀든의 치열한 방황과 고민을 절실할 정도로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자기가 겪고 있는 이 방황에 답은 있는지, 이 방황이 얼마나 길어질지 그리고 어느 순간 답이 나올지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삶의 문제니까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앤톨리니 선생님이 홀든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방황을 하게 되면 그 이상을 얼마나 추구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 이상이 좌절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그 고민의 끝이 앤톨리니 선생님의 말처럼, 그리고 홀든의 방황의 끝처럼 반드시 삶의 방향에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방황하고 때로는 이상이 좌절되더라도 묵묵히 살아가는 것, 그것만은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임재범의 노래 <비상>의 가사처럼 힘겨웠던 방황이 이 세상을 견뎌내 줄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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