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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및 감상

최근 더 메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이 흥하고 셰프라는 직업이 각광받듯 시대의 흐름에도 맞아떨어지고 음식이라는 소재 역시 매우 흥미로운데요 특히 섬이라는 폐쇄적 공간을 설정한 스릴러적 요소가 더해져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닫힌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할 틈 없이 영화의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주목할만한 점은 이 영화 단순한 스릴러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비유와 은유적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존재하는데요 따라서 아래에서는 더 메뉴의 결말을 포함하여 해석을 남겨봅니다.

 

아래는 더 메뉴에 대한 해석으로 일부 결말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메뉴 해석

음식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무엇을 먹는가는 우리를 형성하고 정의하며, 이는 나와 타자 혹은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누가 우리의 주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주저 없이 쌀이라 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화 문화, 세월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죠.

 

즉 자기 은유로서의 음식은 타자와 나 혹은 우리를 구분하는 주요한 요소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 더 메뉴를 해석해 본다면 음식은 계층 간의 구분입니다. 그들이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 혹은 살기 위해서가 아닌, 사회 경제적으로 계층의 위치를 구분짓기 위한 요소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메뉴 해석에 있어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계층, 계급입니다. 소름 돋는 점은 바로 이 영화의 계층 혹은 계급에 대한 인식은 2022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의 소설에서 그녀의 계층 인식을 과정을 따른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슬로윅

우선 주인공 줄리언 슬로윅을 봅시다.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셰프입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는 철저하게 계급의식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여주인공 마고에게 너는 누구냐 묻죠. 그는 마고가 자신과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인, 즉 하류 계층인 것을 알아차린 사람입니다.

 

우리랑 같은 부류니깐 밑바닥 인생.
by 줄리언 슬로윅

 

왜 그는 마고가 서비스업 종사자이며 하류 계층 사람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계층 이동자이기 때문입니다.

 

더 메뉴 결말 부근에서 나와 있듯 그는 햄버거를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상류 계층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주방을 지배하는 셰프가 되었습니다. 즉 노동자에서 식당에서 지배적 권력을 가진 셰프로 계층 이동이 발생한 사람인 것이죠.

 

완벽한 상류 계층으로의 편입은 아닐지라도 그는 일반적인 노동자에서 셰프로, 그리고 지배계층과 동등하게 그들을 상대하는 위치로 계층 이동이 발생한 인물인 것입니다. 다른 직원들은 같이 생활하지만 그의 숙소만은 다른 곳에 있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죠. 그래서 그는 상류 계층의 허식과 부조리를 느끼는 인물임과 동시에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상류 계층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마고가 자신과 같은 서비스업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으로 철저하게 계급에 대한 인식을 가진 인물임과 동시에 지배문화에 환멸을 가지게 된 인물이기도 하죠.

 

재미있게도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완전한 상류 계층으로 편입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고에게 말했듯 밑바닥 인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죠. 왜냐하면 그는 근본적으로는 음식을 대접하는 입장임과 동시에 상류 계층에게 평가받는 입장이며 또한 이 가게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대체 메뉴를 개발하라는 말도 듣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계층적 층위는 상류 계층과 하류 계층의 중간점 혹은 상류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계층적 인식은 하류에 머무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고의 층위를 날카롭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철저하게 계급 인식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는 두 번째 코스요리입니다.

 

더 메뉴에서 두 번째 코스요리의 이름은 <추억>입니다. 이때 그는 사람들에게 타코의 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타코 화요일에 그의 아버지가 취해서 돌아와서는 어머니는 해하려 했다는 추억이죠. 그는 왜 이 끔찍한 추억을 이야기했을까요?

 

그 추억이야 말로 바로 계급의식의 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름 돋게도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의 첫 내용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에르노의 소설 <부끄러움>을 보면 주인공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날이 계급의식의 기점이 되는 날이 되어버리죠.

 

셰프로 똑같습니다. 슬로윅 역시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는 추억을 이야기하죠.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에 상세하게 나오지만 요약하자면,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아버지의 원초적 폭력성은 민중 계급과 결부되는 성격입니다. 이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화자 그리고 셰프는 세계와의 일체감이 깨어지는데 그 균열을 계급적 낙인이 메꾸는 것으로, 결론적으로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되는 사건인 것입니다.

 

“직접 훈제한 브레스 닭다리 타코와 에어룸 옥수숫가루로 직접 만든 토르티야입니다. 호손의 시그니처 요리죠. 저희는 메뉴를 계속 바꾸지만 블룸 씨도 아시듯 이 요리는 첫날부터 계속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두 번째 메뉴는 그의 철저하게 계층, 계급의식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메뉴이기 때문에 시그니처 요리가 되었으며, 바뀌지 않는 메뉴인 것이죠. 이 메뉴가 바로 상징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계층과 계급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절 타코의 밤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하려 하자 아버지를 가위로 아버지의 허벅지를 찔렀다고 말하는데 닭다리 요리에 가위가 그대로 꽂혀 있죠. 소름 돋는 연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이후 코스 요리의 장면과 또다시 연결됩니다. 바로 부주방장 캐서린이 코스 요리를 소개하는 장면이죠. 여기서 그녀는 과거 셰프인 줄리언 슬로윅이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때 캐서린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죠.

 

캐서린

 

그는 그래도 돼요. 스타이자 권력자니까. 
by 캐서린

 

슬로윅은 권력을 이용하는, 그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계층의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동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캐서린은 과거 슬로윅이 아버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가위허벅지를 찌르죠. 과거 아버지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공개하며 알리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의 의미로 그가 아버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벌을 달게 받는 것으로 ,이는 모두 연결되는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더 메뉴 결말

이러한 관점에서 더 메뉴 결말에 접어들면 마지막 장면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결말에 이르러 마고는 슬로윅의 방에 들어가게 되죠. 거기서 그녀가 본 것은 탄탈로스로 비유되는 슬로윅의 기사와 햄버거를 만들던 노동자 슬로윅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습니다.

 

 

우선 탄탈로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올림포스에 초대되어 신들과 함께 어울리는 특권을 누린 인물입니다. 올림포스는 비유적으로 상류 계층을 말하고 탄탈로스는 슬로윅을 의미하죠.

 

탄탈로스는 타르타로스에서의 형벌로 유명한데요 그는 점점 거만해져서 신들에게 분노를 사 타르타로스의 연못에 살게 되는 벌을 받습니다. 그곳에서 과일을 먹으려고 나무에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는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고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이 말라버려 영원히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비유적으로 슬로윅의 현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본질은 사라지고 상류 계층의 허영과 부조리, 그리고 만족 못 할 인간들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 삶에 환멸을 느낀 슬로윅은 이들을 메뉴로 삼아 모두 없애버리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고는 놓아줍니다. 왜일까요? 우선 마고는 슬로윅의 방에서 그가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이달의 직원에 선정된 그가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마고는 배가 고프다고 말합니다. 요리사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 말인 것이죠. 그리고 치즈버거를 달라 하죠. 슬로윅은 햄버거 가게의 노동자였으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 대화는 의미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류 계층의 삶을 표상하고 같은 계층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마고: 사람들이 좋아할 음식을 내는 게 유일한 목적인데 해내지 못했지. 최악인 건 난 아직도 배고파. 

슬로윅: 배가 고프다고? 뭐가 먹고 싶지? 

마고: 치즈버거. 진짜 치즈버거. 전위적이고 어쩌고 하는 번지르르한 가짜 말고 진짜 치즈버거. 

슬로윅: 태어나 처음 먹었던 치즈버거를 만들어주지. 가난한 부모가 사줬던 싸구려 치즈버거를.

여주인공: 아메리칸 치즈로.

슬로윅: 치즈버거엔 아메리칸 치즈버거가 딱이지.

 

이 대화가 왜 성립하냐면 바로 같은 하류 계층이었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로 동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준다는 요리사의 본질 그리고 같은 계급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였던 동질감 등등.

 

젊은 시절 환하게 웃는 주인공

그리고 이 장면은 더 메뉴 영화 내에서 셰프가 유일하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는 하는 장면임과 동시에 그가 유일하게 웃음 짓는 장면입니다. 마치 그가 처음 햄버거 가게에서 이달의 직원에 선정되어 환하게 웃던 그 시절처럼 말이죠.

 

마고는 그에게 왜 처음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되었었는지...  그때의 마음을 다시 일깨워준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유일하게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더 메뉴 결말에 이르러 최후에 남은 사람들은 직원들을 포함하여 모두 무로 돌아갑니다. 스모어라는 음식으로 말이죠. 그리하여 마고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스모어의 재료가 됨으로써 모든 것이 정화의 불길로, 새롭게 구축되고 파괴됨으로써 처음으로 돌아가듯 영화는 장렬하게 마무리됩니다.

 

여기까지가 더 메뉴의 해석이었는데요 이 이외에도 인물 간의 상호작용을 보면 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멋진 영화였습니다.

 

참고로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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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대표작 부끄러움 해석

아니 에르노 대표작 부끄러움에 대한 간단 해설 2022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의 을 읽었습니다. 해당 소설은 직전에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작품인 와 핵심을 공유하는데 바로 계층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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